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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과 전계신 등이 대마도에서 서계와 왜인과의 문답내용을 치계하다.
부사과 전계신(全繼信), 역관 사역원판관 이언서(李彦瑞), 부사정 박대근(朴大根)이 치계하였다.
“신들이 8월 17일에 부산(釜山)에 이르러 4경 초에 배를 띄워 한꺼번에 돛을 달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 사시말에 대마도 풍기(豊崎)에 이르렀는데 지방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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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별록과 장계를 먼저 보냈으나 바다의 날씨로 왜선을 보냄을 치계하다.
전계신(全繼信)이 치계하기를,
“신 일행은 바야흐로 평의지(平義智)가 사는 곳에 머물러서 가강(家康)의 글을 고쳐 오기를 기다리면서 군관 감경인(甘景仁)을 위차(委差)하여 문답별록과 장계를 가지고 길을 곱잡아 먼저 가게 하려 하였으나, 바다에 비바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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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파송할 사신의 차출과 제반 준비를 하게 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제 전계신(全繼信)의 문답별록을 보니, 도왜 평의지(平義智) 등이 서계를 고쳐 쓸 뜻을 이미 덕천가강(德川家康)에게 비보하였으나 고쳐 온 뒤에 또 우리나라가 지연시킬까 근심한다 하였습니다. 요즈음 대마도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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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부사과 전계신이 일본 국왕의 서계 수정을 불허한 전말을 치계하다.
차관 부사과 전계신(全繼信)이 치계하기를,
“지난달 23일 평의지(平義智)의 차인이 일본에 가서 덕천가강(德川家康)의 글을 고칠 뜻을 문답한 사연은 이달 4일에 군관 감경인(甘景仁)을 위차하여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어제 귤지정(橘智正)이 와서 신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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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신의 치계에 대한 대응조치는 그가 귀국한 후 처치하게 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제 전계신(全繼信)의 치계를 보건대, 귤지정(橘智正) 등이 ‘일본국왕이 우리가 서계를 고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문득 의심을 일으켜 허락하려 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유구(琉球)·고좌군(高佐郡)에 관한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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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와 헌부절차를 강정하고 회답 서계와 주문 문서도 서두르게 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이제 전계신(全繼信) 등의 치계를 보면 평의지(平義智) 등이 덕천가강(德川家康)의 서계를 고쳐 가지고 온다 하였으니, 귤지정(橘智正)이 반드시 오래지 않아 나올 것입니다. 일본이 먼저 스스로 글을 보내고 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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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이 일본의 정황을 정탐할 중의 대동을 청하자 불허하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이 아뢰기를,
“신들이 듣건대, 덕천가강(德川家康)의 부중의 일체의 기무는 한두 중[僧]이 그 권세를 모두 잡았으므로 유정(惟政)이 갔을 때도 먼저 이들과 교제하여 서로 정이 도타워지게 하여 적의 정세를 정탐하는 여지로 만들었다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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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능자를 즉시 효시하고 중국과 일본에 회유하기를 청하다.
승정원 동부승지 박동열(朴東說)이 상소하기를,
“천도가 잘 회복되어 적이 바야흐로 화를 뉘우치고 능을 범한 원수를 묶어 보내어 전일의 우호를 찾으므로 신인의 해묵은 분이 하루아침에 풀리게 되니, 종사와 신민의 경사가 크다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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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부가 왜와의 통호에 앞서 부국강병을 위한 내치와 왕도 실현을 상차하다.
헌부가 상차하기를,
“신들이 비변사의 문서를 가져다 보니 ‘덕천가강(德川家康)이 스스로 말하기를 「임진년의 변란 때에 우리 군사는 한 사람도 바다를 건너가지 않았다.」 라고 했고 또 스스로 풍신수길(豊臣秀吉)이 한 짓을 죄다 돌이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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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헌부의 차자와는 달리 일본의 사정이 다른데 따른 처치를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대신의 차자를 보니 ‘일본은 우리에게 만세토록 잊을 수 없는 원수이고 이번에 사신을 보내어도 성패에 도움은 없고 대의에 부끄러움만 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정대한 논의이니, 이런 논의가 없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