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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례사 박희중 등에게 옷 등을 하사하고 국서를 내리다.
일본회례사 박희중(朴熙中)과 부사 이예(李藝) 등이 길을 떠나니, 각각 옷 1벌씩과 모관․갓․신과 약품을 내리고, 서장관인 봉례랑(奉禮郞) 오경지(吳敬之)와 통사 윤인보(尹仁甫) 등에게 각각 모의관․갓․신을 내렸다. 국서에,
“조선국왕은 일본국왕 전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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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례사 판선공감사 박안신 등에게 선물과 함께 답신을 보내다.
일본회례사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 박안신(朴安臣)과 부사 대호군 이예(李藝) 등이 배사하니, 임금이 박안신과 이예 등을 인견하고 각기 옷 1벌과 갓과 신을 내려 주고, 종사관 공달(孔達)과 최고음(崔古音)․박침(朴忱)에게도 또한 옷 1벌과 갓과 신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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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례사의 종사관이었던 공달을 종부시판관으로 제수하다.
사직 공달(孔達)을 종부시 판관으로 제수하도록 명하였다. 달은 공부(孔俯)의 아들인데, 3번이나 일본회례사의 종사관이 되어 포상할 만한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특히 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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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례사 김거원이 피로인 569명을 데리고 오다.
일본회례사(日本回禮使) 김거원(金巨原)이 중 범명(梵明)과 더불어 피로(被擄) 본국인 569명을 거느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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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절도사가 회례사 최용소편에 피로인 570여명을 보내며, 대장경을 청하다.
일본회례사(日本回禮使) 최용소(崔龍蘇)가 구주절도사(九州節度使) 원요준(源了俊)이 보낸 중 종구(宗俱)와 함께 돌아오고, 피로되었던 남녀 570여인이 돌아왔다. 예빈경(禮賓卿) 송득사(宋得師)를 보내어 영접 위로하게 하였는데, 그 절도사의 글월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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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해주목사 양수를 일본에 조문케 하다.
전 해주목사(海州牧使) 양수(梁需)를 일본에 보내어 국왕에게 글을 전하게 하였으니, 보빙과 조상을 위함이었다. 부물(賻物)은 백세저포(白細苧布)·흑세마포(黑細麻布) 각 25필(인삼(人蔘)·송자(松子) 각 50근, 잡채화석(雜彩花席) 10장, 호피(虎皮)·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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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례사 송희경이 일본국왕의 서한을 가지고 복명하다.
일본회례사(日本回禮使) 송희경(宋希景) 등이 들어와 복명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위로하였다. 일본 국왕의 서한에 말하기를,
“사신이 오는 편에 삼가 진중한 서한과 아울러 기다리던 ≪석전(釋典)≫을 받으니, 지극히 감사한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겸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