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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부원군 성석린의 졸기.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成石璘)이 졸하였다. 석린의 자는 자수(自修)이니, 경상도의 창녕 사람으로서 문정공(文靖公) 성여완(成汝完)의 아들이다. 스스로 독곡수(獨谷叟)라고 호칭하였다. 공민왕 6년 정유에 과거에 오르니, 나이 20세였다. ……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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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이 왜를 막아낸 태조의 공을 치하하다.
4월, 공양왕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문병하고 억지로 일어나게 하였다. 교서(敎書)를 공신에게 내려 그 공로를 칭찬하고 내구마(內廐馬) 1필, 백금(白金) 50냥, 비단과 명주 각 5단(端), 금대(金帶) 1개를 내리고 이내 내전에서 위로하는 연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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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후손을 자칭하는 육주목 의홍에게 본관과 토전을 주는 것을 거절하다.
일본 좌경대부(左京大夫) 육주목(六州牧) 의홍(義弘)이 구주를 쳐서 이기고 사자를 보내어 방물을 바치고, 또 그 공적을 말하였다. 임금이 의홍에게 토전(土田)을 하사하고자 하다가,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 권근(權近)과 간관의 의논으로 그만두었다. 의홍이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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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일하례에 일본사신도 9품 말미에서 행례하다.
탄일이므로 하례를 받았다. 일본의 사신도 또한 9품 말미에 들어와 행례하였다. 옛 제도에는 탄일에 반드시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하였는데, 이때는 풍우가 때를 잃고, 변괴가 여러 번 있었으므로 정지하고, 오직 세자와 의안공(義安公) 이화(李和)·영안후(寧安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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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부사 성석린이 왜노에 대한 대책을 상서하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성석린(成石璘)이 상서하여 시무 20조를 진달하였는데, 명하여 의정부(議政府)에 내려서 의논하게 하였다. 상서에 이르기를,
“……1.왜노가 근심이 된 지 오래온데, 지금까지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 봉하여 왕으로 삼았고,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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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부사 하윤 등이 변방을 왜가 범한다고 아뢰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하륜(河崙)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아가 청정하기를 청하니, 윤허하지 않았다. 아뢰기를,
“백관이 이미 담례(禫禮)를 행하였으니 송나라 제도에 의하여 효복(孝服)을 벗고 정사를 들으소서.”
하니,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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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해주목사 양수를 일본에 조문케 하다.
전 해주목사(海州牧使) 양수(梁需)를 일본에 보내어 국왕에게 글을 전하게 하였으니, 보빙과 조상을 위함이었다. 부물(賻物)은 백세저포(白細苧布)·흑세마포(黑細麻布) 각 25필(인삼(人蔘)·송자(松子) 각 50근, 잡채화석(雜彩花席) 10장, 호피(虎皮)·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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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일본의 중을 만날 것을 허락하다.
일본 소이전(小二殿)의 사승(使僧) 경승(慶勝)을 인견하였다. 대호군(大護軍) 평도전(平道全)이 아뢰었다.
“지금 온 소이전의 사승 경승이 말하기를, ‘지난 11일, 주상이 대전에 좌정하여 조회를 받고자 하니, 중[僧]들로 하여금 참여토록 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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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천군과 지의정부사가 북경에서 돌아와, 일본정벌과 조선침략등에 대해 논하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여칭(呂稱) 등이 북경(北京)에서 돌아와서 아뢰었다.
“황제가 잔치를 내려 주어 후하게 위로하고, 권규에게 구마(廐馬) 3필, 단(段)·견(絹)을 각각 8필씩 하사하였습니다. 또 궐내의 환관의 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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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통신사 박분의 행차를 정지시키다.
일본통신사(日本通信使) 박분(朴賁)의 행차를 정지하라고 명하였다. 처음 하륜(河崙)의 건의로써 명하여 박분을 통신사로 삼아서, 국서와 예물을 가지고 행하여 경상도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부에서 아뢰었다.
“박분이 이미 병을 핑계하고 행하지 않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