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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2년(1011) 신해년
2년 봄 정월
초하루 을해일. 거란 임금이 이끄는 군대가 개경으로 진입해 태묘(太廟)와 궁궐 및 민가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이 날 왕은 광주(廣州)(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에 머물고 있었다.
정축일. 호종했던 신하들이 하공진(河拱辰) 등이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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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후8년(1339) 기묘년
봄 3월
계미일. 왕이 침전(寢殿)에서 죽으니 재위 기간이 25년이며 향년 46세였다. 성품이 엄격 침착하고 총명했으며 글을 잘 짓고 예서(隸書)에 능했다. 또 성격이 유달리 깔끔한 것을 좋아하여 한 달에 드는 목욕 비용으로 각종 향이 열 동이가 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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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사신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충혜(忠惠)의 4대는 부자지간에 서로 다투면서 심지어 원나라의 조정에 함께 송사까지 함으로써 천하 후세의 비웃음을 샀다. 아비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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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2년(1011) 신해년
二年 春正月 乙亥朔 契丹主入京城, 焚燒太廟․宮闕․民屋皆盡. 是日, 王次廣州. 丁丑 扈從諸臣, 聞拱辰等被執, 皆驚懼散走, 惟侍郞忠肅․張延祐․蔡忠順․周佇․柳宗․金應仁不去. 戊寅 王發廣州, 次鼻腦驛. 壬午 次長谷驛. 乙酉 丹兵退. 丙戌 王過仁義縣, 次水多驛. 丁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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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후8년(1339) 기묘년
後八年 春三月 癸未 王薨于寢, 在位前後二十五年, 壽四十六. 性嚴毅沈重聰明, 善屢文, 工隸書. 又性好潔, 一月湯浴之費, 諸香十餘盆, 苧布不下六十餘匹, 名曰手巾. 多爲內竪所竊, 王不之知. 忠惠王後五年十二月, 元贈諡忠肅, 恭愍王六年閏九月, 加上尊號曰懿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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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논평
史臣贊曰, “自烈宣肅惠世歷四代, 父子相夷, 至與之訟于天子之朝, 貽笑天下後世. 且父子天性之親, 孝爲百行之先, 而政事之本也. 本旣失焉, 其他無足觀者. 忠肅晩年, 遺棄國事, 出舍外郊, 信任朴靑等三竪, 威福下移. 若子若孫, 皆罹凶夭, 可勝嘆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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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충순蔡忠順
채충순(蔡忠順) 채충순(?~1036) 음성 채씨[陰城蔡氏․濟陽蔡氏]로, 목종~현종 때 중추원직학사(中樞院直學士)․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한 문신관료이다. 그의 선대는 음성현(陰城縣)(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지역의 토착세력으로 고려 초기부터 관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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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극겸文克謙
문극겸(文克謙)은 자가 덕병(德柄)이며 남평군(南平郡)(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사람이다. 그의 부친 문공유(文公裕) 문공유(1088~1159) 뒤에 문고수(文顧壽)라 이름을 고쳤다. 자가 항적(亢迪)이며 시호가 경정(敬靖)이다.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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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정金周鼎 부 김심金深
김심(金深)은 충렬왕 때 뚤루게[禿魯花] 뚤루게 숙위(宿衛)를 위해 왕족․고위 관료의 자제를 선발하여 원나라에 보낸 인질을 말한다. 뚤루게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취려(金就礪) 부 김흔전(金忻傳) 참조.로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뒤에 낭장(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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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규趙仁規 부 조연趙璉
조연(趙璉)은 자가 온중(溫仲)이며 부친의 공로 덕분에 여러 벼슬을 거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다. 충숙왕 때 첨의평리가 되었다가 찬성사로 옮겼다. 왕이 원나라에 갔다가 억류 억류 충숙왕이 원나라의 입조(入朝) 요구에 따라 원에 들어갔다가 억류된 사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