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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남치근과 전라우수사 김빈이 왜변을 치계하다.
제주목사 남치근(南致勤)과 전라우수사 김빈(金贇)이 왜변을 치계하였다.
【치근의 장계는 다음과 같다.
“5월 22일 황당선(荒唐船) 한 척이 서대양(西大洋)에서 동쪽을 향해 와서는 돛을 반쯤 올리고 조천관(朝天館)을 향해 갔습니다. 또한 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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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남 ․ 성혼 ․ 김성일 ․ 정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응남(金應南)을 부제학에, 성혼(成渾)을 우참찬에 제수하였다. 경상감사 김성일(金誠一)을 가선대부에 가자하고, 대호군 정운(鄭運)을 북병사(北兵使)로 추증하였다.
【성일은 젊어서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황이 죽을 무렵 조정에 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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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에서 둔전 시행에 대한 잘못을 이유로 호조 당상 등의 파직을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군국의 수요로는 둔전이 급선무인데도 호조에서 시일을 지연시키면서 결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농사철은 이미 박두하였는데도 일을 제때에 맞추어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매우 한심스럽습니다. 어찌 추고만 하고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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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판의 교체 문제, 변란에 대응하는 일을 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고【영중추부사 심수경(沈守慶),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판중추부사 최흥원(崔興源), 호조판서 김명원(金命元), 지중추부사 김수(金睟), 우승지 구성(具宬)이 입시하였다.】이르기를,
“병판 심충겸(沈忠謙)이 논박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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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감주부 조목이 항왜 문제에 대해 상소하다.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조목(趙穆)이【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경술이 있어 유일로 등용되어 일찍이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지냈었다.】상소하기를,
“신은 이제 나이가 일흔 하나로 이미 관직에 나갈 때는 아닙니다. 다만 국가가 우리나라 역사이래 천고에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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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대사헌 등과 홍여율의 논상과 진정창법 등에 관해 논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론하였다. 상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어찌 각자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하지 않는가?”
하자, 대사헌 김늑(金玏)이 아뢰기를,
“집경전(集慶殿)의 어용이 지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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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윤승훈 ․ 조익 ․ 김지남 ․ 이충원 등과 시국을 논하다.
묘시 정각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시독관 조수익(趙守翼)이 이괘를 진강하였는데 서괘에서 양덕·양신·절무까지 하였다. 강을 마치고 나서 윤승훈(尹承勳)이 나아가 아뢰기를,
“신이 은가를 받아 양주에 가서 소분할 때 경차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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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료들과 일본과의 강화, 서계, 일본에 파견할 사절의 명칭 등에 관해 의논하다.
유영경(柳永慶)이 아뢰기를,
“가강(家康)의 서계가 이미 대마도에 도착하여 장차 나오려 한다고 합니다. 당초 능침을 범한 왜적은 평조윤(平調允) 부자라고 들었는데, 그것은 귤지정(橘智正)과 박대근(朴大根)이 서로 말할 때에 말끝에 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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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순찰사 김성일의 졸기.
경상좌도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이 죽었다.
당시 혹심한 병란에 백성은 굶주리고 여역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이에 성일이 직접 나아가 진구하면서 밤낮으로 수고하다가 여역에 전염되어 죽었다. 일로의 군사와 백성들이 마치 친척의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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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이 일본과의 강화와 병란에 대비할 것 등에 대한 상소를 올리다.
홍문관 전한 이황(李滉)이 상소하기를,
“신은 생각하건대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에 이적은 금수라고 합니다. 이적도 사람이지만 이를 금수에 비유하는 것이 진실로 심한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의를 몰라 군신상하의 분별이 없어서 그 삶이 어리석고 무식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