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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관을 보내 고경명과 조헌, 유팽로에게 제사지내게 하고 순의단에 사액하다.
예관을 보내 충렬공 고경명(高敬命)과 문열공 조헌(趙憲)과 박사 유팽로(柳彭老)에게 제사지내게 하고, 순의단(殉義壇)에 사액하였는데, 단은 금산군에 있었다. 세 사람은 바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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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연 이민서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박광옥과 김덕령에 대해 포장할 것을 아뢰다.
주강에 나아갔다. 동경연 이민서(李敏敍)가 말하기를,
“광주(光州) 사람 박광옥(朴光玉)은 바로 명종(明宗) · 선조(宣祖) 때의 사류인데, 문과 출신으로 대관과 시종을 지냈습니다. 임진란을 맞이하여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창의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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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금산군수로서 순국한 권종을 정문하도록 하다.
고 군수 권종(權悰)을 정문하도록 명하였다. 권종은 임진왜란 때 금산군수(錦山郡守)가 되어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에게 격문을 보내고, 군사를 모아 죽기를 결단하고 싸우다가 고경명과 서로 잇따라 패몰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 연신이 그 실상을 아뢰자, 임금이 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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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승지 윤행교가 왜국의 서계와 예단은 전례에 따라서 보낼 것을 아뢰다.
동부승지 윤행교(尹行敎)가 상소하여 말하기를,
“왜국의 서계와 예단은 오직 한결같이 전례를 따라서 마련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하며, 만일 퇴각하는 일이 있으면 그 잘못은 저들에게 있지 우리에게 있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신료의 서계는 국서와 다르니 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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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홍우서가 임진왜란 때 싸우다 죽은 고인후의 봉사손을 녹용하기를 청하다.
주강에 나갔다. 교리 홍우서(洪禹瑞)가 글의 뜻으로 인하여, 임진년 때 싸우다 죽은 사람 고인후(高因厚)의 봉사손을 녹용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고인후는 바로 고 참의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인데, 부자가 모두 왜란에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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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영 등이 임진년의 변란에 순절한 최경회에게 은전의 시호를 내려주기를 상소하다.
전라도 유생 이만영(李萬榮)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말하기를,
“임진년의 변란에 의병을 일으켜 순절한 선비가 호남에서 많이 나왔으나, 그 중에서 가장 드러난 자는 김천일(金千鎰)·고경명(高敬命)·최경회(崔慶會) 이분들입니다. 성고께서 임어하시던 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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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죽은 박이현을 공조참의에 증직하다.
…… 박이현(朴而絢)은 순천사람이고, 박영서(朴永緖)는 근의 세번째 아들이다. 박이현은 임진왜란 때 포의로 성주에서 창의하여 제봉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서로 호응하는 형세를 이루어, 누차 왜적과 싸워 참획한 것이 많았는데, 군대가 패배하게 되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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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를 보내어 왜란 때 순절한 여러 신하들에게 사제하다.
근시를 특별히 보내어 일신의 충렬사와 나주의 정렬사와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여러 신하들에게 사제하고, 이어서 고경명(高敬命)의 후손 고한원(高漢元)을 조용하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호남구관당상 원경하(元景夏)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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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조하 김재로가 이덕형과 조헌에 대해 치제할 것을 아뢰다.
임금이 함인정에 나아가 조강하여 ≪중용≫을 강하였는데, 봉조하(奉朝賀) 김재로(金在魯)가 입시하였다. 김재로가 말하기를,
“이덕형(李德馨)은 선묘조의 대단히 뛰어난 명상이고, 조헌(趙憲)의 도학과 절의는 사람들이 함께 아는 바이나, 부조지전에 이르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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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독관 임제원이 열성조께서 인심을 배양했기에 임란 극복이 가능했다고 하다.
소대하였다. ≪국조보감≫을 진강했는데, 시독관 임제원(林濟遠)이 말하기를,
“이는 임진년 일의 전말입니다. 당시의 병력으로 말하건대 출정한 상장병이 8천 인에 지나지 아니하여 오늘날의 병력에 비하건대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였고, 당시의 인물로 말하건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