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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등이 사총병을 만나고 29일 사이에 군사를 발정시켰다고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와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신들이 사총병(査總兵)이 머물고 있는 곳에 가 보니 병부우시랑 송응창(宋應昌)이 지난 8월 18일에 제본을 올려 22일 사이에 내려온 성지를 가져왔었습니다. 거기에 의하며 29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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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만관에서 원황을 영접하고 포를 옮길 소의 징발을 의논하다.
이날 병부주사(兵部主事) 원황(袁黃)이 압록강을 건넜다. 상이 용만관에 나아가 영접하고 또 유원외랑(劉員外郞)을 맞이하였는데, 원황이 말하기를,
“명나라에서 귀국을 위하여 많은 군사를 내었는데 만약 안정(安定)에 도착하였다가 양식이 떨어져 퇴군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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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판서 이항복 등을 인견하여 이여송이 평양으로 물러난 일 등을 논의하다.
포시에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병조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니 우부승지 심우승(沈友勝)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제독이 평양으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근래 말먹이 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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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허욱이 총독은 우리나라 일에 화를 내며 주본을 바꿀 것만 청한다고 치계하다.
청량사(請糧使) 허욱(許頊)이 치계하였다.
“신이 누차 민망하고 안타까운 뜻으로 도사에게 간청하여 총독에게 정소해 줄 것을 요청하니, 도사가 들어주려고는 하지 않고 주본을 바꿀 것만을 요구했습니다. 금주(金州)에서 보내주기로 한 군량의 일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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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총병과 함께 중국 원병 요청에 대하여 의논하다.
상이 총병 유정(劉綎)을 남별궁에서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오로지 대인을 의지해 왔는데 대인이 이제 철수하니 더욱 의뢰할 바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대로 이곳에 머무르겠습니까? 아니면 어느 곳에 머무를 것입니까? 손시랑(孫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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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별전에서 남방과 서북쪽의 변고에 대한 비변사 당상들의 의견을 듣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남쪽의 일이 아직도 평정되지 못하였는데 서북쪽에 또 변고가 있으니, 각기 소회를 진술하라.”
하니,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나아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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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사 행호군 권협이 중국의 구원군과 군량미 지원 시말을 치계하다.
고급사(告急使) 행호군 권협(權悏)이 치계하기를,
“신이 3월 2일 북경에 도착하였는데, 3일 이른 아침에 제독의 주사 이두(李杜)가 보낸 사람이 부사 정유미(程惟美)와 함께 와서 오게 된 까닭을 묻고 나서는, 가지고 온 자문과 주문을 먼저 보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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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이 일본의 정세에 관한 일로 자문을 보내다.
흠차총독계요보정등처군무겸리양향경략어왜도찰원우도어사겸병부우시랑 건(蹇)이 적정에 관한 일로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이 보낸 자문을 받아보니 ‘만력 30년 11월 20일에 경상도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이 치계한 내용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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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이 노자 동반, 사행의 수검, 왜와의 문답 등에 관해 아뢰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이 아뢰기를,
“신이 대동할 군관·역관·의원·화원·사자관들은 모두 직을 가진 의관의 사람들로서 멀리 이역에 가니, 사실 부경의 편리하고 가까운 것에 비길 바 아닙니다. 노자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적들이 보기에 극히 매몰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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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 심유경이 병부의 첩으로 왜장을 타이르다.
유격 심유경(沈惟敬)이 다시 와서 병부의 첩으로 왜장을 타일렀는데, 그 첩에 이르기를,
“유격 장군 심유경이 갖춰 올린 제장과 제승의 각 편지 및 투구와 갑옷 제물을 조정에 바쳐 조공하기를 바라는 뜻을 표한 것을 살펴보고서, 본부에서는 비로소 너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