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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수 안서우가 안흥진의 방비책 5가지를 상서하다.
태안군수(泰安郡守) 안서우(安瑞羽)가 상서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안흥진(安興鎭)에다 군향을 유치시켜 강도(江都)를 지원하게 한 것은 진실로 매우 치밀한 것이었으나, 지금 수만 석의 군량을 바닷가 한 모퉁이에다 유치시켜 두었는데, 본진의 입방한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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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도안무사가 임진왜란때 용만에서 내린 교문에 의하여 역순을 밝히라고 청하다.
북도안무사 윤헌주(尹憲柱)가 사폐하고 입대하여 청하기를,
“성상의 뜻을 굳게 정하시어 거빈할 계획을 하지 마시고, 임진왜란 때 용만(龍灣)에서 내리신 교문에 의하여 팔도에 효유하여 역순을 밝히소서.”
하니, 임금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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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태좌가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과 함께 죽은 사람에게도 포증하기를 아뢰다.
대신·비국당상을 인견하였다. …… 심공(沈珙)이 아뢰기를,
“홍임(洪霖)은 이봉상(李鳳祥)과 더불어 정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한때 데리고 있던 군관에 불과했는데도 변란에 임하여 절의에 죽었습니다. 비록 정려는 하였으나 아직도 증직을 하지 않았으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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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독관 심성진이 임란 때 명에 군사를 청한 정곤수의 후손들을 녹용해야 한다고 진달하다.
임금이 소대를 행하였다. 시독관 심성진(沈星鎭)이 진달하기를,
“임진왜란 때 서천부원군(西川府院君) 정곤수(鄭崑壽)가 명나라 조정에 군사를 청하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슬피 호소하자, 병부상서 석성(石星)이 여기에 감동되어 군대를 파견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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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김재로가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조종도에게 시호를 내릴 것을 청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당상을 인견하였다. …… 김재로(金在魯)가 또 청하기를,
“갑자사화 때의 명현인 조위·박한주(朴漢柱)와 임진왜란 때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조종도(趙宗道)에게도 시호를 내려야 하니, 기일을 정하여 전랑을 보내소서.”
하고, 송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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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수 권시적이 임진왜란 때 동정한 이여송 형제에게 특별한 은전을 베풀기를 아뢰다.
강화유수 권적(權)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지난 임진왜란 때 천장 이여송(李如松)·이여백(李如栢)·이여장(李如樟)·이여매(李如梅)·이여오(李如梧) 형제가 일시에 동정하여 번방을 재조하였는데, 그 풍공·위열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이목에 비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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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유상화 등이 임진왜란 때 죽은 정득열에게 벼슬을 추증하고 시호를 내리기를 청하다.
유학 유상화(柳相華) 등 수백 인이 상소하여 고 현감 정득열(鄭得說)과 정득열의 아들 정택뢰(鄭澤雷)에게 벼슬을 추증하고 시호를 내리기를 청하였으나, 임금이 이미 벼슬을 추증하였다 하여 윤허하지 않았다. 대개 정득열은 임진왜란 때에 힘껏 싸우다가 죽었고 정택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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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의 충의위 이성창 등이 전정에 비를 세우기를 청하다.
경기전(慶基殿)의 충의위 이성창(李聖昌) 등이 상소하여 전정에 비를 세우기를 청하였다. 이성창은 시정에서 땅에 엎드렸던 자이다. 전주는 국조 시조의 본향이고 태조가 왜구를 정벌할 때에도 일찍이 이곳에 주절하였으므로 국가에서 주나라의 기(岐)와 한나라의 풍패(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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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판서 조현명이 국출신을 혁파하도록 아뢰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당상을 인견하였다. 임금이 병조판서 조현명(趙顯命)에게 하문하기를,
“지난번에 어떤 유신이 국출신의 요과를 증가시키라고 진언하였는데 이 말이 어떠한가?”
하니, 조현명이 아뢰기를,
“국출신을 설치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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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한학에 익숙한 자로 한학교수에 차임하라고 하교하다.
임금이 한학문신의 전강에 임시하여 거수한 사람인 학정 노태관(盧泰觀)과 부정자 권항(權抗) 등에게 상전을 하사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국가에 우려가 없는 것은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니, 혹시 사변이 있는 때를 만나게 되어 상역은 담당할 사람이 없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