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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감사가 왜적이 태릉을 파헤쳤다고 보고하다.
태릉(泰陵)의【문정왕후(文定王后)의 능이다.】 능묘가 왜적들에 의해 파헤쳐졌음을 경기관찰사가 치계 하였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과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능침에 변괴가 있었다니 망극하여 문안드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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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이정형의 군공 계본에 따라 논상하기를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이정형(李廷馨)의 군공 계본을 보니,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의 변은 실로 고언백(高彦伯)이 공격하여 죽여 흩어지게 한 공으로 인하여 그 흉한 모의가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참한 24급은 공이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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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일이 왜적이 강릉과 태능을 도굴하려다 실패했다고 보고하다.
김천일이 치계하였다.
“12월 16일에 적이 기병과 보병 50여 명을 거느리고 또 성중의 주민 50명을 뽑아 강릉(康陵)과 태릉(泰陵)에 가서 능을 팠지만 능 위에 회(灰)가 단단하게 막혀서 깨뜨리지 못하고 날이 저물어 파하고 되돌아왔으며, 또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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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천군 이신이 능침을 봉심하고 돌아와 아뢰다.
운천군(雲川君) 이신(李愼) 등이 능침을 봉심하고 돌아와서 아뢰었다.
“광릉(光陵) 두 능은 능과 석물이 모두 전과 같으나 정자각(丁字閣)의 창과 벽이 여기저기 파손되었고 재실청(齋室廳)이 반은 소실되었으며, 봉선전(奉先殿)의 창과 벽이 여기저기 파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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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좌도 관찰사 성영이 선릉과 정릉의 변을 아뢰며 속히 경성을 수복하자고 치계하다.
경기좌도관찰사 성영(成泳)이 치계 하였다.
“지난겨울에 흉적이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을 범하는 변고가 있었는데 이제 선릉(宣陵) · 정릉(靖陵)의 변고가 또 이와 같으니 온 나라의 신민들이 이 왜적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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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흥원 등과 선릉과 정릉의 처리, 왜적의 토벌 등을 논의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한 뒤에 대신들을 인견하여 의논하여 처리할 것을 청하였다. 상이 청민당(聽民堂)에 나아가 여러 재신들을 들어오도록 명하니 영의정 최흥원,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부원군 정철(鄭澈), 판돈녕 정곤수(鄭崑壽), 지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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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휘사 오종도가 게첩을 보내다.
도지휘사(都指揮使) 오종도(吳宗道)가【중국 사람으로 서울에 와 있었다.】게첩을 보내었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일찍이 옛말을 들으니 ‘태평 시대는 험난해지지 않을 수 없고 어지러운 사태는 회복되지 않을 수 없으며, 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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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학림도정 이언진이 태릉을 지킨 일에 논상해야 함을 아뢰다.
6405. 비변사가 학림도정 이언진이 태릉을 지킨 일에 논상해야 함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원주(原州)에 거주하는 전 참봉 이해붕(李海鵬) 등이 본사에 정장하기를 ‘학림도정(鶴林都正)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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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언백을 양주 목사로 삼다.
고언백(高彦伯)을 양주목사(楊州牧使)로 삼았다. 언백은 교동(喬桐) 사람으로서 향리로 무과에 올라 종군하며 모반한 호인을 공격하여 명성이 었었다. 도원수를 따라 장령이 되어서는 적의 수급을 벤 공이 있었는데 양주로 돌아가 군사를 모아 적군을 치겠다고 자청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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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이 왜적이 태릉을 범할 때에 금은을 모아 왜장에게 뇌물을 주고 중지하게 한 것을 아뢰다.
전교하기를,
“최경(崔慶)은 미천한 사람으로서 항상 천서·음양서를 보았으며 그의 아들의 이름을 세무(世茂)로 지었다가 또 이경립(李景立)으로 이름을 고쳤고, 김강재(金强哉)를 숨겨 두고 장차 뒷날 다시 거사할 모의를 획책하였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