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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성을 쌓고 백성을 옮겨 살게 하는 일을 추수 때까지 기다리게 하다.
공조에서 계하기를,
“첨절제사 이각(李恪)이 일찍이 말씀을 올리기를, ‘강화부에 성을 쌓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들어가서 지키게 할 것입니다.’하였으며, 본부에 거주하는 백성들도 또한 말씀을 올리기를, ‘원컨대 강화부의 옛터에 읍성을 쌓고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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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제 이각이 요해지를 골라 변경을 튼튼하게 하자고 상서하다.
전 총제 이각(李恪)이 상서하기를,
“전함을 두어 요해지를 지키는 것은 변방의 지경을 튼튼히 하는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본조는 삼면이 바다에 면하고 있으므로, 수로와 육로의 진수(鎭戍)에 외환을 막는 방법이 마땅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계책이 빠진 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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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가 왜인 구류를 잘못한 처치사 이각에게 죄주기를 청하다.
경상도관찰사가 치계(馳啓)하기를,
“대마도(對馬島)의 종정성(宗貞盛)이 보낸 상관인(上官人) 사모다로(沙毛多老)와 선주(船主) 연시로(延時老) 등이 문서(文書)를 고쳐 써 가지고 방자스럽게 장사하러 왔다고 하므로, 처치사(處置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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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음모도에 도착한 왜인 11명을 죽인 최완을 추국하게 하다.
전라도처치사 이각(李恪)이 급히 아뢰기를,
“왜인이 금음모도(今音毛島)의 동면(東面) 우아포(亐兒浦)에 도착하여 하륙(下陸)하므로, 여도부천호(呂島副千戶) 최완(崔浣)이 쫓아가서 싸워 적군 11명을 목 베고, 그 나머지는 모두 화살에 맞아 물에 빠져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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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을 함부로 잡아들인 최완을 문초하다.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전라도처치사(全羅道處置使) 이각(李恪)이 치보하기를, ‘최완(崔浣)이 왜인을 잡은 일은 조심하지 않았음이 핵실되었다.’ 하오니, 체포하여 문초하기를 청하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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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사 병조참판 신인손을 북경에 보내 제주 관선을 침범하고 약탈한 왜구를 중국으로 보냄을 아뢰다.
주문사 병조참판(兵曹參判) 신인손(辛引孫)을 북경에 보냈는데, 그 아뢰는 글에 이르기를,
“의정부에서 장계하기를, ‘정통(正統) 8년 8월 15일에 전라병마도절제사 남궁(南宮)이 제주목사 신처강(辛處康)의 정문을 갖추어 아뢰기를, 「본년(本年) 6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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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가 쳐들어 와, 동래부사 송상현 등이 죽다.
왜구가 침범해 왔다. 이보다 먼저 일본 적추 평수길(平秀吉)이 관백이 되어【당초에 수길이 매우 빈천하여 꼴을 베어 팔아 생활하였다. 전 관백이 출행할 때 옷을 벗은 채 수레 앞에 누워 있었다. 부하들이 죽이려고 하자 관백이 제지하고 나서 소원을 물었다. 수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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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잡과 적의 형세와 평양으로 옮길 일을 논의하다.
신잡(申磼)이 돌아왔다. 상이 인견하고 하문하기를,
“적세가 어떠하던가?”
하니, 잡이 아뢰기를,
“유시 말에 혜음령(惠音嶺)에 도착했다가 도로 동파(東坡)로 왔는데, 이각(李珏) · 성응길(成應吉) 등이 적을 방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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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민종신 등을 인견하고 징병 상황, 적의 형세 등을 묻다.
상이 선전관 민종신(閔宗信), 승지 노직(盧稷), 주서(注書) 박정현(朴鼎賢), 가주서(仮注書) 한우신(韓禹臣), 검열 김선여(金善餘)·김의원(金義元) 등을 인견하였다. 상이 종신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들은 것을 다 말하라. 징병은 어떻게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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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이 치계 하였다.
“신은 죄가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특별히 천지 같은 재생의 은혜를 입어 형벌을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초유의 책임을 맡겨주시니, 신은 명을 받고 감격하여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면서 이 왜적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