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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충趙冲
조충(趙冲) 조충(1171~1220) 본관은 횡천(橫川)으로 문하시중을 지낸 조영인(趙永仁)의 아들이다. 명종 20년(1190) 과거에 급제한 후 고종 때까지 국자대사성․서북면병마사․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희종 5년(1209)․7년․고종 6년(12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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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달한文達漢
문달한(文達漢) 문달한(?~1392) 본관은 남평(南平)(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이고 증조는 문윤실(文允實)이고 조부는 문구(文球)이다. 부친은 문경(文璟)으로 공민왕 때 대부경(大府卿)을 역임하였다.박용운, 『고려사회와 문벌귀족가문』, 경인문화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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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초尉貂
위초는 본래 거란 사람으로 명종대에 산원동정(散員同正)이 되었다. 부친 위영성(尉永成)이 난치병에 걸리자 의원이 자식의 살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위초가 즉시 넓적다리 살을 베어 만두소를 만들어 먹이니 병이 차도를 보였다. 왕이 듣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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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榮儀
영의(榮儀) 영의(?~1170) 영위(榮緯)라고도 하며, 의종 18년(1164)에는 일관(日官)으로 재직하면서 국왕의 명령을 받고 예안군(禮安郡)(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 파견되어 화엄종(華嚴宗) 사원인 용수사(龍壽寺)의 터를 살펴보았다.허흥식,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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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포칭崔褒偁
최포칭(崔襃偁)은 의종(毅宗) 초에 어사잡단(御史雜端)이 되었고, 직문하성(直門下省)․상서우승(尙書右丞)․전중감(殿中監)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후 우승선(右承宣)에 임명되었다가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전임되었으며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승진했고 곧 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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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부鄭仲夫 부 송유인宋有仁
송유인은 인종 때에 그 부친이 나라를 지키다가 순사했으므로 특별히 산원(散員) 벼슬을 받았다. 얼마 후에 태자부지유(太子府指諭)로 위장군(衛將軍)이 되었는데 태자가 그를 특히 총애해 많은 하사품을 주었다. 애초 송나라 장사꾼인 서덕언(徐德彦)의 처에게 장가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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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방李義方
이의방 이의방(?~1174) 전주사람이다. 그이 동생 이린(李隣)은 후일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무신난 당시 그의 직위는 산원에 지나지 않았으나 대인관계는 매우 다양하였다. 친형 이준의(李俊儀)를 비롯하여 명종 3년(1173)에 남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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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정曹元正
조원정은 옥장(玉匠)의 아들로, 그 모친과 조모는 모두 관기(官妓)였다. 애초 7품 관직이상 오르지 못하게 되어 있었으나 정중부의 난 때 이의방을 도운 공로로 낭장(郞將)과 장군(將軍)까지 역임할 수 있었다. 명종 때 공부상서(工部尙書)가 되었다가 추밀원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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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승李公升
李公升, 字達夫, 淸州人. 六世祖希能, 五世祖謙宜, 皆從太祖定三韓, 爲功臣. 公升少穎悟, 能屬文. 仁宗朝擢第, 直翰林院, 累遷右正言. 毅宗初, 轉殿中侍御史, 奉使如金. 時使金者, 例收管下軍銀人一斤, 公升不取一錢, 人服其淸. 王嘗乘月遊淸寧齋, 目公升曰, “秋月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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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극겸文克謙
文克謙, 字德柄, 南平郡人. 父公裕, 知門下省事集賢殿大學士, 謚敬靖. 克謙, 初以伯父公仁, 蔭補刪定都監判官. 國制, 以藍衫就試者, 例不過三赴. 克謙屢擧不中, 嘆曰, “白衣且十赴, 藍衫何止三赴?” 請以五赴爲限, 朝議從之, 遂爲恒規. 克謙從宦, 未常廢業, 毅宗時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