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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명사와의 문답을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오늘 양사가 양화도(楊花渡)에 이르러 잠두봉(蠶頭峯)에 오르지 않고 곧장 선소로 갔습니다. 이어 배를 띄우고 물결을 따라 내려가 거의 10리쯤 지나 강마을 절벽 아래에 이르러 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습니다. 오랜 비 뒤에 날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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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에 교량에 대한 일을 각별히 감독하도록 전교하다.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어제 저녁 정사의【이종성(李宗城).】차관 양빈(楊賓)이 소서비(小西飛)의【왜국이 화친하는 일로 소서비를 중국에 차송하였는데 지금 중국 사행과 함께 서울에 있다.】차왜 2명과 함께 웅천(熊川)에서 올라왔는데 별로 분명한 소식이 없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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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왜영에서 돌아온 양빈의 품첩을 등서하여 그 내용을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어제 왜영에서 돌아온 양빈(楊賓)이 문견한 내용으로 품첩을 만들어 사신에게 바쳤으므로 그 첩을 등서하여 올립니다.”
하였는데, 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영의 왜병 수목은, 두모포(豆毛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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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정사의 동태를 보고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접대도감 낭청이 와서 문틈으로 말하기를 ‘정사가 통사 남호정(南好正)을 불러 분부하기를 「오늘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을 내려가게 하지 말라. 동작진(銅雀津)의 나룻배는 두 척만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다 숨겨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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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중군의 정황을 탐문하여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전일 정사가 말한 바, 동작진(餇雀津)의 나룻배를 숨겨 둘 것과 새벽에 남대문 등을 열지 말라고 한 일을 신들이 다방면으로 탐문했으나 그 실상을 파악치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 남호정(南好正)이 비로소 정사 관하의 노예초(路禮初)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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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특진관 정곤수 등과 왜에 대한 정탐과 통호에 대해 논의하다.
오정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였다. 특진관 행판돈녕부사 정곤수(鄭崑壽)【위인이 온아하고 인자하여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간에 오직 구제해 주는 데에 마음을 썼다. 또 서적을 몹시 좋아하고 전고에 밝았으며 고금 세가의 족계에 대해서도 모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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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 도감에서 중국사신이 게시한 표첩을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중국 사신이 표첩을 게시하였습니다.”
하였는데, 표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수행원들이 이따금 사사로이 연회하는 일 및 창기와 자는 일이 적발되니 너무도 법규를 범하고 있다. 응당 조사해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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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에서 중국 사신의 소풍에 대해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중국 사신이 경회지(慶會池) 가에 이르러 곧 배에 올랐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전부 멀리 있게 하였고 또 신들도 먼 곳에서 기다리게 하였으며, 차비통사 등도 배를 타지 못했는데 다담도 받지 않았습니다. 단지 상공 3인 및 어린 가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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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정사의 차관에게 왜영에 대해 물은 것을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방금 정사의 차관 이서(李恕)가 웅천(熊川)에서 왔기에 그곳의 소식을 물었더니 ‘19일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이 통사의 칭호를 붙여 보낸 절강인(浙江人) 5명이 와서 말하기를 「행장이 관백에게 가서 휴가를 청해 조상에게 제사지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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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김가유의 품첩을 보고 정사가 내건 방문을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소서비(小西飛)를 거느린 중국 통사 주원(朱元)이 김가유(金嘉猷)가 보낸 품첩을 가져왔는데 정사가 보고는 별로 분부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다만 방문을 써서 대문 밖 벽 위에다 게시했기에 그 방문을 베껴서 들입니다. 이것은 전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