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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高麗史箋
정헌대부(正憲大夫) 정헌대부 조선초기의 문산계로 정2품직이다.․공조판서(工曹判書)․집현전대제학(集賢殿大提學)․지경연춘추관사(知經筵春秋館事) 겸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 정인지(1396∼1478) 본관은 하동(河東)(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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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 12년(1009) 기유년
12년 봄 정월
경오일. 왕이 숭교사(崇敎寺)에 행차했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폭풍이 불어 일산의 자루가 부러졌다.
임신일. 왕이 상정전(詳政殿)으로 가 연등행사를 관람하고 있는데 대부(大府) 대부 고려시대 영송고(迎送庫)․국신고(國贐庫) 등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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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즉위년(1009) 기유년
2월
경인일. 강조(康兆)를 중대사(中臺使)로, 이현운(李鉉雲) 이현운(?~?) 목종~현종 때 중대부사․이부시랑(吏部侍郎)․행영도통부사(行營都統副事)를 역임한 무신관료이다. 그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94, 열전7, 양규전(楊規傳) 참조.을 중대부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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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22년(1031) 신미년
22년 봄 정월
신유일. 동여진 사람 이우불(尼于弗)이 와서 말과 병장기를 바쳤다.
을해일. 임금이 적전(籍田)을 친히 경작한 후 유배형 이하의 죄수를 사면했다. 또 원구(圓丘)와 방택(方澤) 방택 방구(方丘)라고도 하며, 토지신에게 제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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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崔冲의 논평
사관 최충(崔冲)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좌전(左傳)』에서는, ‘하늘이 장차 흥기시키려 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말했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23년의 내용이다. 천추태후(千秋太后)가 방탕하고 황음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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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李齊賢의 논평
이제현(李齊賢)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최충(崔冲)의 말은 세상에서 이른바 천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월나라 임금 구천(句踐) 구천 중국 춘추시대 월왕(越王)의 이름이다. 구천(句踐)이 오나라의 왕 합려(闔閭)를 죽이자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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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 즉위년(1031) 신미년
6월
초하루 정축일. 서눌(徐訥)을 검교태사(檢校太師)로 임명했다.
기묘일. 강감찬(姜邯贊)을 검교태사․시중(侍中)으로 임명했다.
을유일. 서여진의 영새대장군(寧塞大將軍) 아지대(阿志大) 등 27명이 와서 좋은 말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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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 2년(1033) 계유년
2년 봄 정월
신미일. 동여진 장군 개다간(開多閒) 등 25명이 입조해왔다.
○ 철리국(鐵利國)이 사신을 보내어 좋은 말과 담비 가죽을 바치니 왕이 가상히 여겨 답례 물품을 후하게 주었다.
을해일. 송나라 사람인 유수전(劉守全) 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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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李齊賢의 논평
이제현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거란은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믿을 수 없는 나라이므로 태조께서는 크게 그들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재앙 재앙 대조영(大祚榮)의 후손인 대연림(大延琳)이 1029년 거란의 동경장군(東京將軍)을 지내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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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6년(1052) 임진년
6년 봄 정월
초하루 무신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갑인일. 최유선(崔惟善)을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임명했다.
병진일. 동여진의 회화장군(懷化將軍) 포가주(包加主) 등이 와서 좋은 말을 바쳤다.
병인일. 동여진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