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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서 신광한이 왜인의 적선을 대비하는 일에 관해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지경연사 신광한(申光漢)이 아뢰었다.
“왜인과 강화를 허락한 후로 남쪽은 튼튼하다 하여 염려하지 않고 있는데 신은 저으기 염려가 됩니다. 신이 전에 예조판서로 있었으므로 그 전말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근래에 그들의 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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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에서 안현이 제장들과 군졸의 수효가 부족하다고 아뢰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특진관 안현(安玹)이 아뢰었다.
“지난번 재변으로 인하여 군무를 조치하라는 하교가 있었기 때문에 신이 등록을 보니 경오년 왜란 때 도원수의 군관 수는 300이었으나 제장들이 부족했던 까닭에 수효를 채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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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에서 심연원 등을 인견하여 달량의 왜변에 대한 방책을 듣다.
상이 사정전에서 심연원(沈連源) 등을 인견했다. 대신 이하에게 앞으로 다가오도록 명하여 이르기를,
“근년 이래로 흉년이 이미 극도에 달하고 재변이 겹쳐 생기므로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왜란이 이에 이르러 주장이 포위되었으니 지극히 놀랍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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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 등을 사정전에서 인견하고 왜변에 대처하는 방안을 아뢰게 하다.
삼공, 두 부원군 육조의 판서, 비변사 당상 등을 명소하여 빈청에 모이게 하였다. 상이 사정전에서 인견하고 이르기를,
“왜변이 이러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지금 주장이 함락당해 피살되었다는 것을 들으니 매우 참혹스럽다. 순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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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길에게 아비의 직임의 승습을 허락하는 일에 관해 예조에서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무위전(武衛殿)의 사송 도선주(都船主) 평강길(平康吉)에게 아비의 직임을 승습하도록 허락한다는 전교를 받고 본조의 등록을 상고해 보니, 정덕(正德) 무인년에 평귀덕(平鬼德)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라다라(而羅多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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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가여희원이 달자에게 가지고 간 선유문 초고를 아뢰다.
병조가【판서 이덕형(李德馨), 참판 한효순(韓孝純), 참의 황섬(黃暹), 참지 이호민(李好閔)】아뢰었다.
“여희원(余希元)이 이억례(李億禮)와 이미 떠났는데, 그들이 그 가지고 간 선유문 초고를 유격에게서 찾아 감히 아룁니다.”
【선유문의 초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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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조가 유계조와 마대공의 폐해를 지적하는 품첩의 초고.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도사 하계조(何繼祖)가 낭청 유달증(兪達曾)을 불러 비밀히 말하기를 ‘내가 유광조(劉光祖)·마대공(馬大功) 등의 탐잔하여 폐해를 끼치는 정상을 목도하고서 통분함을 견딜 수 없어 신도사(愼都司) ․ 호도사(胡都司)와 연명으로 양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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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순국한 고 안음현감 곽준에게 특별히 시호를 내려주다.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예조판서 조상우(趙相愚)가 아뢰기를,
“고 안음현감 곽준(郭䞭)은 정유년의 왜란을 당하여 이때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지키다가 산성이 함락되자 자신이 순국하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도 그 아비를 보호하여 가리우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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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홍우서가 임진왜란 때 싸우다 죽은 고인후의 봉사손을 녹용하기를 청하다.
주강에 나갔다. 교리 홍우서(洪禹瑞)가 글의 뜻으로 인하여, 임진년 때 싸우다 죽은 사람 고인후(高因厚)의 봉사손을 녹용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고인후는 바로 고 참의 고경명(高敬命)의 아들인데, 부자가 모두 왜란에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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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 이수덕이 영남 연변의 주사군이 사기가 떨어져 왜적 방비가 걱정스럽다고 상서하다.
장령 이수덕(李壽德)이 상서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신이 영남의 연변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주사군이 원통하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익히 들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임진년과 계사년의 왜란을 겪고 부흥한 뒤로부터 조정에서 이들 무리에게 매우 두텁게 진휼하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