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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을 참판으로, 신잡을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삼다.
이정암(李廷馣)을 참판에,【사신은 논한다. 이정암이 사람됨은 키가 작으며 몸집도 작고 가냘퍼 옷의 무게도 이기지 못할 듯하였지만 타고난 성품이 강직하고 과감하며 정교하고 민첩하여 일을 처리함에 있어 성색에 동요되지 않았으며 시세를 따라 저앙하지 않았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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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파주에서 전사한 천총과 중국군을 평양의 예로 관렴하고 호송하기를 청하다.
예조가 아뢰었다.
“파주(坡州)에서 전사한 천총(千摠) 및 중국군은 평양에서 전사한 군사의 예에 따라 경기감사 이정암(李廷馣)에게 하서하여 관렴해서 호송하게 하고, 제문은 예문관으로 하여금 지어 올리게 하며 주재하고 있는 각 고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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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당하관으로 호종할 사람의 명단을 이비에 전교하다.
이조의 당하관으로 호종할 사람의 명단을 가지고 이비(吏批)에게 전교하였다.
“병조 당상의 수가 매우 적으니 참판 이정암(李廷馣)을 갈고, 이조참의 심충겸(沈忠謙)을 차임하라. 전 내수사별좌(內需司別坐) 양금(梁嶔)은 비록 정원 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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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 ․ 이유중 ․ 이수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정암(李廷馣)을 병조참지로,【굳센 적이 쳐들어와 열군이 와해되었는데 이정암은 일개 서생으로 의병대를 독려하여 외로운 성을 지켰으므로 연안(延安)한 고을만은 어육을 면하였으니 그의 의열은 일컬을 만한 것이다.】 이유중(李有中)을 홍문관교리로, 이수광(李睟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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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량어사 강첨이 백성들이 잔폐하고 있다고 무휼하기를 청하다.
충청도운량어사 강첨(姜籤)이 치계하기를,
“군사를 일으킨 이래 부역이 날로 번다하여 백성들이 터전을 잡고 살 수가 없어서 열 집에 아홉 집은 비었고 게다가 난리가 일어난 뒤로는 열읍의 수령에 거의 무인을 임시로 차정했으므로 한갓 엄격하고 가혹하게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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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부산에 주둔하고 있으니 권율을 도원수로 삼는 일을 의논하라고 이르다.
상이 이르기를,
“당초 왜적이 물러갈 때에 사람들은 모두 서로 기뻐하는 기색을 띠고, 왜적이 불원간 본토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면서 추격할 뜻을 보이지 않으므로 나는 그러하지 않으리라고 역설하였는데, 지금까지 왜적은 부산에 주둔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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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 이정암 ․ 황섬 ․ 박응복 ․ 정곤수 ․ 유영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전라도관찰사 권율(權慄)을 도원수로, 이정암(李廷馣)을 전라도관찰사로, 황섬(黃暹)을 전주부윤으로, 박응복(朴應楅)을 겸동지의금(兼同知義禁)으로, 정곤수(鄭崐壽)·유영길(柳永吉)을 겸도총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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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전라도 각지의 산성을 수축하여 들어가서 지키게 하도록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일 전라감사 이정암(李廷馣)의 장계에 의하면, 도내의 산성을 살펴보니 남원(南原)의 교룡산성(蛟龍山城), 담양(潭陽)의 금성산성(金城山城), 순천(順川)의 건달산성(乾達山城), 강진(康津)의 수인산성(修仁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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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사 이정암이 김덕령의 재주가 뛰어나니 군사를 책임지울 것을 청하다.
전라도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전일 삼가 받든 유지에, 항오 가운데 장재가 있어 쓸 만한 사람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담양부사(潭陽府使) 이경린(李景麟)의 첩보를 보건대, 부내에 거주하는 교생 김덕령(金德齡)이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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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순찰사 이정암이 중국군이 철군하니 우리 힘으로 왜적을 공격하자고 무군사에 건의하다.
전라순찰사 이정암(李廷馣)이 무군사에 첩정을 올렸는데 ‘중국군이 철병하려고 하니 마땅히 우리나라의 병마를 초발하여 한번 사생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도내 각 고을에 있는 용맹한 군사를 정밀히 가려서 도회처에 모아 대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도원수가 이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