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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 여윤철의 졸기.
동지중추부사 여윤철(呂允哲)이 죽었다. 정원이 아뢰기를,
“윤철은 절조가 맑고 개결하여, 오직 나라뿐 집을 잊었습니다. 전에 평안도절도사에 재임하여서는 마음을 다하여 방어하였고, 전라도 수사가 됨에 미쳐서는 왜노가 변방을 침구할까 염려하여 언제나 해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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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이 함락되었다는 보고가 오다.
이보다 먼저 상이 직접 교서를 써서 우승지 신잡(申磼)에게 주면서, 가서 경성의 사민들을 깨우치고 또 유도대신 이양원(李陽元)과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을 효유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파주까지 와서 경성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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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임진 전투의 패배 상황, 군량의 조달, 각도의 전투 상황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 최흥원(崔興源)·윤두수(尹斗壽), 우찬성 최황(崔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호조판서 한준(韓準), 병조판서 김응남(金應南), 대사헌 이항복(李恒福), 동지 이성중(李誠中), 부제학 심충겸(沈忠謙), 대사간 정곤수(鄭崐壽), 동지 이덕형(李德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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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의병들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며 각 장수의 절제를 받도록 하자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태평세월이 오래 되어 기강이 풀어진 끝에 전쟁이 일어났으므로 수습할 길이 없습니다. 무장으로서 고을을 맡아 지키는 자 대부분이 모두 적을 만나기만 하면 패하였으므로 뜻이 있는 자들이 소매를 떨치고 의에 분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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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이 개성부 및 경성 부근을 돌아보고 상황을 아뢰다.
한성부 판윤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였다.
“신이 이달 21일에 개성부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목청전(穆淸殿)좌차(左次)패배를 뜻함.은 이미 철거되었으며, 교목(喬木)은 모두 베어져 통곡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해(公廨)는 거의 모두 타버렸으며 여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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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순찰사 권징이 이제독의 군대가 진군하는 상황을 치계하다.
경기순찰사 권징(權徵)이 치계하였다.
“제독의 대군이 이달 23일에 개성부에 도착하였고 파주(坡州)에 주둔해 있던 적은 이달 23일 경성을 향하여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화(金化) ․ 금성(金城)의 적은 17일부터 이틀간 잇따라 올라와 동대문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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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이 파주에 진주했다가 벽제에서 왜적에게 대패한 상황을 기록하다.
앞서 이제독(李提督)은 평양(平壤)을 탈환하고는 승승장구하여 정월 초열흘날 밤에 개성부에 들어왔다. 본부의 사족과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은 100냥과 쌀 100석을 내어 장세작(張世爵)을 시켜 나누어주어 진휼하게 하고, 패로써 유정(劉綎)의 군대를 재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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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찰사 유홍이 벽제 전투의 전말을 치계하다.
도체찰사 우의정 유홍(兪泓)이 치계하였다.
“이날 27일 이제독(李提督)이 군사를 거느리고 발행했는데 ‘사부총(査副摠)과 고언백(高彦伯)이 같이 적을 정탐하러 나갔다가 마침 적병 6~7백을 만나 적 4백여 급을 참획했으나 많은 적이 무수히 나오므로 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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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파주에서 전사한 천총과 중국군을 평양의 예로 관렴하고 호송하기를 청하다.
예조가 아뢰었다.
“파주(坡州)에서 전사한 천총(千摠) 및 중국군은 평양에서 전사한 군사의 예에 따라 경기감사 이정암(李廷馣)에게 하서하여 관렴해서 호송하게 하고, 제문은 예문관으로 하여금 지어 올리게 하며 주재하고 있는 각 고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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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이제독이 동파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26일 제독이 개성부를 경유, 임진의 얕은 나루를 건너 파주(坡州)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27일 제독은 이도독(李都督)과 같이 가정 100여 명을 거느리고 벽제(碧蹄)를 향해 달려갔는데 이는 몸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