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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김경로가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를 갖도록 청했다고 치계하다.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신이 전지의 내용에 따라 제독에게 고하였더니 제독이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기를 ‘김경로(金敬老)의 죄는 본래 사형에 처해야 된다. 다만 경성을 수복하지 못했으니 장사 한 사람도 관계가 있다. 내가 곧 국왕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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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이 파주에 진주했다가 벽제에서 왜적에게 대패한 상황을 기록하다.
앞서 이제독(李提督)은 평양(平壤)을 탈환하고는 승승장구하여 정월 초열흘날 밤에 개성부에 들어왔다. 본부의 사족과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은 100냥과 쌀 100석을 내어 장세작(張世爵)을 시켜 나누어주어 진휼하게 하고, 패로써 유정(劉綎)의 군대를 재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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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벽제에서 패한 이제독이 개성으로 퇴각하려 한다고 치계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豐院府院君)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어제 제독이 개성부로 돌아가 인마를 조금 휴식시키려 하기에 신이 이덕형(李德馨)과 더불어 백방으로 간절히 진술하기를, ‘대군이 한번 물러나게 되면 민심이 흩어진다.’ 고 하자 이제독(李提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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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만관에서 총병 양원을 접견하고 염장 공급, 병마 ․ 군량 ․ 기계의 상황을 논의하다.
상이 용만관(龍灣館)에 행행하여 총병 양원(楊元)을 접견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국왕께서는 평양을 공격할 때에 누가 먼저 올라갔다고 들었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하방 사람들은 대인께서 먼저 올라갔다고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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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유격 진방철의 벽제 전투에 대한 말을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유격 진방철(陳方哲)이 와서 하는 말이 ‘지난 달 27일에 먼저 군마 500여기를 보내 경성을 정탐하게 했고 또 3,000명을 배후에 매복시켰다. 선발대가 성 아래에 이르니 많은 왜적이 몰려나오며 접전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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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왜적을 소탕하기 위해 중국 병부에 자문을 보내다.
병부에 이자하였다.
“이 달 4일에, 함경도관찰사 윤탁연(尹卓然)과 평안도좌방어사 이일(李鎰) 등이 덕원부사(德源府使) 김신원(金信元) 등이 비보한 것을 갖추어 치계한 바에 의하면 ‘영흥(永興) 이남의 각처에 머물던 왜적이 각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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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전라순찰사 권율, 도원수 김명원 및 운량사 권징의 추고를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순찰사 권율(權慄)은 외람되이 중임을 맡고서 조처가 시의를 잃어 전후의 전쟁에서 많은 군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군이 이르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스스로 도강하여 무악(毋岳)에서 총포를 쏨으로써 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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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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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이제독이 동파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26일 제독이 개성부를 경유, 임진의 얕은 나루를 건너 파주(坡州)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27일 제독은 이도독(李都督)과 같이 가정 100여 명을 거느리고 벽제(碧蹄)를 향해 달려갔는데 이는 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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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이 동파로 물러나 머무르다.
중국군의 사상자는 수십 명이고 제독의 가정 중 아주 신임하는 자 1명도 죽었는데 제독이 말 위에서 통곡하였습니다.
28일 이른 아침에 동파(東坡)로 물러나 주둔하려 하므로 신이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접대사 이덕형(李德馨),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