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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인이 송시랑을 만나 중국군의 출발 일정을 묻고 난 뒤 보고하다.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2일 일찍이 송시랑(宋侍郞)의 아문(衙門)에 갔더니 시랑이 당에 앉아 있다가 회환하는 진주배신(陳奏陪臣)에게 상견례 행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신이 역관 임춘발(林春發)을 시켜 들어가 아뢰게 하기를 ‘배신이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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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등이 장도사를 만나 중국군의 출동 시기를 묻고 난 뒤 보고하다.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어제 신들이 장도사(張都司)를 만나 은밀히 군사 출동 기일을 물었더니, 도사가 말하기를 ‘송경략(宋經略), 이총병(李摠兵) 및 순무(巡撫)와 순안(巡按)들이 모두 요동에 모였으니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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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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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응양과 함께 군량수송에 태만한 윤승훈의 치죄 ․ 이여송의 전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지휘 황응양(黃應陽)이 경리의 말을 전하기 위하여 왔다. 상이 나아가 그를 맞아 전상에 오른 다음 서로 읍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지휘가 밀첩을 올렸다. 이는 경리가 손수 쓴 것인데 그 내용에,
“상을 내릴 때 소원한 자라도 빼놓지 않고 벌을 내릴 때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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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발이 손문욱과 귤지정이 문답한 별록을 동봉하여 장계를 올리다.
경사도 관찰사 이시발(李時發)이【국량이 편협하였다.】장계를 올렸는데, 손문욱(孫文彧)과 귤지정(橘智正)이 문답한 별록을 동봉해 올려보냈다. 그 별록의 대략에,
“지난해 임인년 12월 18일 소인이 왜관에 가서 군문의 유서를 높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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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광녕의 이총병이 왜적의 정세를 묻은 일에 대해 논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광녕(廣寧)의 이총병(李總兵)은 우리나라의 일에 자못 유의하여 우리나라의 통사를 보면 반드시 왜적의 정세를 묻습니다. 우리나라가 한 위관을 얻어 변경의 성세로 삼기를 바란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그것은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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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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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이 명군의 남원성 주둔, 왜적의 구례 침입, 왜적 후퇴 등을 알리다.
전라도 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7월 12일에 보낸 병사 선거이(宣居怡)의 치보에 ‘전후에 내려온 중국 장수 낙참장(駱參將) · 송유격(宋遊擊) · 사총병(査總兵)·이도독(李都督)·고유격(高遊擊) · 오지휘(吳指揮) · 여상공(呂相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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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관찰사 이정암이 중국군의 움직임을 보고하다.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남원(南原)에 주둔하고 있는 사총병(査總兵)·여상공(呂相公)이 순천(順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19일 전주(全州)에 도착하였는데, 조총병(祖總兵)도 이날 남원에서 전주로 왔으며, 이도독(李都督)·고유격(高遊擊) ·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