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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안찰사 소대형에게 박경신의 문제 등에 대해 이자하다.
산동안찰사(山東按察司) 소(蕭)에게 이자하였다.
“조선국왕은 고성(孤城)이 날로 위급한 사태에 봉착하고 속국이 아직도 험난한 고비가 많음으로 해서, 밤낮으로 애써 주시는 성의을 우러러 받들어 그 대략을 급히 개진하여 묘당(廟堂) 계획을 들어서 전쟁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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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총병을 접견, 노고를 치하하고 다례 ․ 주례를 행하다.
상이 동총병(董總兵)의【동일원(董一元)】관소에 행행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천조에서 재차 군병과 군량을 조발하여 시종 구원하여 주시니 황은이 망극하외다. 대인도 소방의 일로 풍상(風霜)을 무릅쓰고 먼 길에 노고하고 있는데 지방이 잔파되어 일로의 부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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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의논의 불일치로 중국 장수들에게 신임을 잃은 것에 대해 논의하다.
비망기로 일렀다.
“내가 지난번 비변사 등의 계사를 보고 이미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기색이 있었음을 알고서 퍽 의아하여 바야흐로 통분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말을 구사함에 있어 또 실수가 있어서 군문의 완강한 거부를 불러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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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기로 남하가 제대로 되지 못한 미안함을 표하고 대책을 세우게 하다.
비망기로 일렀다.
“내가 남하하는 일은, 어제 양(楊)·마(麻) 두 대인(大人)과 면약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장사들도 모르는 자가 없어, 더러는 나를 대하여 위로하기를 ‘국왕께서 따라가신다니 천자께서 들으신다면 또한 반드시 기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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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윤형, 충청절도사 이시언이 적과의 전투상황을 보고하다.
정유년 12월 30일 성첩한 접반사 윤형(尹泂)과 충청도절도사 이시언(李時言)의 치계는 다음과 같았다.
“이 달 24일 아침에 총병이 고도독(高都督)과 함께 군사를 출동시켜 울산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켰습니다. 좌협의 군사가 이미 적과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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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진인을 만나 적과의 전투 상황 및 이길 계책을 논의하다.
상이 진유격(陳遊擊)의【진인(陳寅).】관사에 행행하여 접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방 때문에 풍설이 몰아치는 먼길을 와 직접 시석을 무릅쓰고 싸우다가 중상을 입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하니, 유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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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호민이 당진옥을 만나 전황을 전해 듣다.
진어사(陳御史)의 접반사 이호민(李好閔)이 아뢰기를,
“어사의 표하인 당진옥(堂進玉)이 안동에서 왔으므로 신이 가서 만나보고 이어 묻기를 ‘양(楊)·마(麻) 두 분은 언제쯤 올라오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마야(麻爺)는 진야(陳爺)의 참핵을 당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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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가 황조에 제본을 올리다.
경리가 황조에 제본을 올리기를,
“경리조선순무(経理朝鮮巡撫) 양호(楊鎬)는 일본의 적추를 거의 사로잡게 되었는데 그들의 외원병이 갑자기 들이닥쳤으므로 삼가 환사하게 된 편의에 대해 진달합니다. 아울러 신의 심정을 피력하니, 신을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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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군문이 그 직임을 계속하면서 후사를 도모하게 해달라는 제본을 올리다.
형군문(邢軍門)의 제본에,
“계요총독 형개(邢价)는 적추를 거의 사로잡을 뻔했는데 구원병이 갑자기 들이닥쳤으므로 삼가 편의상 군사를 거두어 돌아와 휴식을 시키다가 다시 출동하여 해방의 평정을 도모하려는 것에 대한 일로 제본을 올립니다. 경리 양호(楊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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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충을 만나려 했으나 죄가 된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았다.
상이 오유충(吳惟忠)을 가서 보려고 대가가 총병의 사처에 이르자 차비통사(差備通事)가 와서 고하기를,
“총병이 말하기를 ‘내가 충주에 머무는 일로 양경리(楊経理)에게 죄를 얻었는데 지금 또 국왕께서 와서 만나면 이것은 나의 잘못을 더하는 것이다.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