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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 정박한 굶주린 왜인들을 구휼하게 하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경상도의 각 포에 와서 정박한 굶주린 왜인들을 구휼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마땅히 말이나 되의 곡식을 주어서 본토로 돌아가도록 재촉하고, 또 굶주린 왜인의 배가 끊이지 않고 왕래하여, 전라도의 조선(漕船)을 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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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찰사 이원익이 왜군의 진주 입성을 보고하다.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치계하였다.
“왜적이 진주 남강에 부계(浮械)를 설치하고 강을 건너 이달 3월에 진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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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덕형 ․ 권율이 울산에서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경리의 접반사인 이조판서 이덕형(李德馨)과 도원수 권율(權慄)이 치계하였다.
“울산에서 승첩을 거둔 날 경리와 제독이 군영으로 돌아와 신을 불러 말하기를 ‘조선군이 현재 도착한 자는 단지 3천 5백에 불과하니, 이여매(李如梅)와 이방춘(李芳春)에게 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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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접반사 장운익이 전투상황을 상세히 보고하다.
정유년 12월 25일 성첩한 제독의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의 치계에,
“이 달 16일 우승지가 성첩한 유지에 ‘상께서 남하하시려고 한 계획이 군문의 저지로 부득이하여 중지됨에 따라 군대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니, 일로의 파발을 신명시켜 군중에서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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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이덕형 ․ 도원수 권율이 적과의 전투 상황을 급보하다.
정유년 12월 29일 청첩한 경리의 접반사 이덕형(李德馨)과 도원수 권율(權慄)의 치계에,
“지난밤부터 서풍이 크게 불고 날씨가 매우 추워졌는데 절병이 강가에서 수비하느라 고초가 극심합니다. 새벽 무렵에 경리가 신들에게 ‘오늘 풍세가 좋으니 땔나무를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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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윤형, 충청절도사 이시언이 적과의 전투상황을 보고하다.
정유년 12월 30일 성첩한 접반사 윤형(尹泂)과 충청도절도사 이시언(李時言)의 치계는 다음과 같았다.
“이 달 24일 아침에 총병이 고도독(高都督)과 함께 군사를 출동시켜 울산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켰습니다. 좌협의 군사가 이미 적과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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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와 이덕형이 경주 ․ 고령 ․ 남원의 군사 배치에 대해 논의하다.
경리가 이덕형(李德馨)에게 말하기를,
“경주(慶州)는 성윤문(成允文)이 좌도의 군사를 조발하여 권응수(權應銖) 등의 군사와 협동해서 방수해야 하는데 그 수가 2천 명은 되어야 하고, 고령(高靈)은 정기룡(鄭起龍)이 우도의 군사를 조발하여 김응서(金應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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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접반사 장운익이 제독이 사직한 정황과 진주성의 공격술에 대해 아뢰다.
제독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제독이 방금 신을 불러 내방으로 들어오게 하더니 차와 술을 권하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 본국의 문헌과 풍속에 대하여 우선 칭찬을 하고 이어 자기의 병마가 간 곳마다 공로를 세웠다는 말을 한 다음 계속하여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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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진주를 함락시키자 김천일 ․ 최경회 등이 전사하다.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켰다.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이 전사하였다.
당시 진주에서 급변을 보고하니, 이여송(李如松)이 경성에서 열둔의 제장인 유정(劉綎)·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 등에게 전령하여 군사를 전진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제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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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