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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참의에게 수영의 현황을 보고하고 조선의 전선에도 자호를 붙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근래에 양경리(楊經理)와 장참의(張參議)의 자문을 잇따라 보니, 그들이 우리나라의 군사 수와 선박 수, 군량의 숫자, 기계의 숫자를 매우 자세히 물었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도 명백히 조사하여 보고하지 않고 몽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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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즙 ․ 이순신 ․ 권준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즙(趙檝濈)을 사간원 정언으로, 이순신(李舜臣)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경상·전라·충청 삼도통제사로, 권준(權俊)을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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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차부도어사가 조선측에 자문을 보내오다.
흠차부도어사(欽差副都御史) 형(邢)이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명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경리하는 편부에 관한 일입니다. 병부의 자문을 받아 보건대, 이것은 해본부(該本部)가 제본한 것으로 직방청리사(職方淸吏司)의 안정(案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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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가 강원도와 경상도의 금년분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방법을 건의하다.
호조가 아뢰기를,
“듣기에, 영남좌도의 풍기(豊基)·영천(榮川)·예천(醴泉) · 봉화(奉化) · 예안(禮安) · 안동(安東)·진보(眞寶) · 청송(靑松)·영해(寧海)·영덕(盈德) · 청하(淸河)·흥해(興海) 등 여러 고을이 왜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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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상서 형개가 천자의 뜻을 받들어 보낸 자문과 그에 대한 회답.
병부상서 형개(邢玠)가 명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경리(經理)하는 일의 편부에 대한 자문에,
“조선국왕이 아뢴 내용에 ‘삼가 생각건대 황제께서는 천지 부모와 같아서 우리나라가 왜적에게 몰락함을 걱정하여 대군을 두 차례나 보냈고 또한 신이 허약하여 스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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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가 은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로 곡식을 사들이는 문제를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동낭중(董郞中)이 분부한, 은자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로 곡식을 사들이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거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만 5천 냥으로 바꾼 청람포는 5만여 필에 이를 것이니 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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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이 양포정이 말한 둔전과 참을 설치하는 문제를 보고하다.
접반사 이덕형(李德馨)이 아뢰기를,
“포정이 신을 보고 말하기를 ‘둔전에 관한 일이 더디고 잘못될까 두렵다.’ 고 하면서, 이어 경상 · 충청 두 지방의 둔전에 파종한 석수를 계산한 단자를 내보이면서 말하기를 ‘경상도는 수전에 파종한 것이 4백여 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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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와 이덕형이 남방의 방수 대책을 논의하다.
경리가 이덕형에게 말하였다.
“남방의 방수는 반드시 지금 조치해야만 전수에 근거지가 있게 됩니다. 이미 군문·감군(監軍)과 서로 의논했는데 전라 · 경상 지방의 요해처 다섯 곳에 천조의 용맹한 장관 1원을 가려 유치시켜 협동하게 하고 조선의 장관 1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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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와 이덕형이 경주 ․ 고령 ․ 남원의 군사 배치에 대해 논의하다.
경리가 이덕형(李德馨)에게 말하기를,
“경주(慶州)는 성윤문(成允文)이 좌도의 군사를 조발하여 권응수(權應銖) 등의 군사와 협동해서 방수해야 하는데 그 수가 2천 명은 되어야 하고, 고령(高靈)은 정기룡(鄭起龍)이 우도의 군사를 조발하여 김응서(金應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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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군량 및 군병 모집의 방법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상 좌·우도 제장의 병력이 고단하고 약하기는 똑같으나 좌도에는 성윤문(成允文)·박의장(朴毅長)·김태허(金太虛)·고언백(高彦伯)·권응수(權應銖) 등이 거느리고 있는 군대가 각처에 분산·주둔하고 있고, 지금은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