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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사 곽영이 성을 쌓아 영남의 적로를 방어하다.
방어사 곽영(郭嶸)이 운봉(雲峯)의 팔량현(八良峴)과 구례(求禮)의 석주(石柱) 두 성을 쌓아 영남의 적로를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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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위사 이지완이 평경직 등에게 선온례에 대한 예절을 익히게 하다.
선위사 이지완(李志完)이 치계하기를,
“박대근(朴大根) 등을 시켜 상관·부관 등에게 이르기를 ‘명일에 선온례를 행할 것인데, 너희들은 문 밖에서 지영하고 뜰아래에서 절하고 꿇어앉는 등의 예절을 아는가? 너희들로 하여금 미리 예를 익히게 하려 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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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피로인을 쇄환하는 왜에 대한 상직은 중국의 처분에 따라야 한다고 행이하도록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임진년 이후에 왜노가 여러 차례 승리한 기세를 끼고 강화를 요구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쇠약함이 쌓인 나머지 여러 해 동안 의심하면서 미루어 왔습니다. 이는 강화를 허락하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대개 약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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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에 이자한 내용중에 왜병이 물러간 뒤에 요동에 관시를 혁파하기를 청하였음을 적다.
〈요동에 이자하여 관시 혁파를 청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압록강 경계가 매우 분명하여 양쪽 지역 백성들이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습니다. 전에 군사 출동으로 인하여 잠시 관시를 설치했었는데 왜병이 물러간 뒤에 절경경략무원(節經經略撫院)이 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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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용 한교가 척계광이 왜를 정벌할 때에 기효신서의 포살법을 썼는데, 활용하도록 상소하다.
〈이에 앞서 조정에서 부사용(副司勇) 한교(韓嶠)가 병사를 잘 안다는 이유로 그로 하여금 서변에 가서 조련에 대한 일을 함께 논의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도성으로 돌아와 상소하기를,
“수레·기마병·보병으로 오랑캐를 방어하는 법은 본래 중국 사람 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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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대마도를 접대하는 좌차에 대해 아뢰다.
동래부사 조존성(趙存性)이 치계하기를,
“객인을 접대하는 좌차를 강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고로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당상관 객인이 아니면, 부사와 첨사가 북벽에 앉고 객인은 남쪽으로 앉으며 그 이하는 뒷줄에 앉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고할 만한 문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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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총병 양종업 등이 조선의 4개도에 왜인이 섞여산다고 한 것에 대해 왕이 주문을 올리다.
이에 앞서 절강총병 양종업(楊宗業)과 유격 심유용(沈有容) 등이 주문을 올리기를,
“일본 살마주(薩摩州)의 군대가 당할 자 없이 막강하여 바로 얼마 전에는 유구국을 멸망시키고 그 왕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조선의 부산을 조차하여 시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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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정에 왜인들이 약조를 준수하지 않고, 해관의 왜인도 천명에 이른다는 자문을 보내다.
중국 조정에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 신 성 모는 ‘귀순한 오랑캐가 명령에 복종하지 않자 천토를 가하려 하는 이때 거듭 총독과 순무의 자문과 격문을 받고 소방의 군병을 조발하고 정비하면서 공손히 명지를 기다리는 일’ 에 관하여 삼가 주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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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호서에 관한 일은 왜정을 달마다 보고하는 예에 따라 자문을 갖추어 전보하도록 아뢰다.
〈양사가 합계하기를,
“신들이 삼가 양경략(楊經略)이 보낸 자문을 보건대 우리나라를 책망하는 것이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었고 우리나라를 꾸짖어 욕한 것이 그렇게 치욕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2백 년 동안 열성께서 대국을 섬겨 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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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양경략에게 왜인들이 매번 1천명이 와서 교역하는 것과, 난동을 부린다고 회자하다.
양경략(楊經略)에게 회자하였다.
“조선국왕은 군사를 일으켜 토역하는 데 대한 일로 회자합니다.
금년 6월 19일에 흠차경략요동등처군무병부좌시랑겸도찰원우첨도어사 양(楊)이 일전의 사안으로 인하여 보내온 자문을 받았는데, 그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