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사 한사문 등이 명나라 조정에서 무역을 허락한다는 것을 아뢰다.
정조사(正朝使) 한사문(韓斯文)·김무(金武) 등이 명나라 서울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제독회동관(提督會同館) 예부주사(禮部主事) 유강(劉綱)의 상서에 이르기를 ‘외국 사람에게 출입을 금하는 일은 오랑캐들의 마음에 분노와 원망을 일으켜 무슨 일을 일으킬 …
-
동평관별좌가 왜인들이 의정문 밖에 둘러섰음을 아뢰다.
동평관별좌(東平館別坐)가 아뢰기를,
“왜인들이 밤새도록 등불을 밝히고 순경하면서 말하기를, ‘조선이 반드시 나의 죄를 다스릴 것이니, 본토로 돌아가야 하겠다. 장차 예조에 고하고 돌아가리라.’ 하고, 40여인이 혹은 역마를 빼앗고 혹은 행인의 말을 빼앗…
-
경차관 김근사가 가덕도 왜변으로 인해 제포의 두왜와 만난 일을 아뢰다.
경차관(敬差官) 김근사(金謹思)의 장계에 이르기를,
“제포(薺浦)의 두왜(頭倭)를 불러 조정에서 의논한 일로써 물으니, 대답하기를, ‘우리도 항상 가덕도(加德島)의 일로 조정의 물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묻기 전에 심포(尋捕)하고자…
-
대마도 대관이 동래군에 유감이 없다 하니 동래현령 윤인복은 왜군을 해산하라고 회답하다.
대마도의 대관(代官) 종병부성친(宗兵部盛親)의 서계에 이르기를,
“조선과 일본은 입술과 이빨이 서로 맞닿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대명국의 선지를 받았는데, 그 선지에 이르기를 ‘양국은 다를 것이 없어 아침저녁으로 통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특히 …
-
의금부에 갇힌 왜인의 처리 문제가 분분하자 남방 평정 뒤에 결정하기로 하다.
의금부에 갇혀 있는 왜인 10명 중에 5인은 일본국 사람이라 자칭하고 5인은 대마도 사람이라 칭하였으며, 그 공초한 것도 모두 반란을 꾸민 사유를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상이 이것을 여러 재상에게 보이고, 이어서 정부·육조판서·한성 판윤 이상으로 의논하여 아…
-
김수동이 박산동개 등에게 관작으로 상줄 수 없다고 의계하다.
영의정 김수동 등이 의계하기를,
“박산동개(朴山同介)에게는 이미 면포와 숙마로 상사하였으니, 이제 다시 상작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궁전과 의복을 하사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구세안은 처음에 1등으로 논공하였으니 다시 논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
-
경상도 관찰사가 칠원 장교 저자 등이 왜인에게 붙잡혔다가 돌아온 일로 장계하다.
경상도 관찰사가 장계하였다.
“칠원(漆原) 장교 저자(諸者)·일수(日守) 최효동(崔孝同)·학생 정한명(丁漢明)이 왜적에게 잡혀갔다가 대마도에서 제포(薺浦)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말하는 대략에 ‘우리들이 진상하는 홍합을 따러 배를 마…
-
선위사 허굉이 일본사신 붕중에 대해 치계하다.
선위사 허굉(許硡)이 치계하였다.
“이달 초이튼날 선위연(宣慰宴)을 베풀었는데, 일본국왕의 사신 붕중이 말하기를 ‘노승이 처음 와서 닿았을 때는, 나라 일을 몰라 지극히 의심스럽고 염려되었는데, 지금 천은을 입게 되니 감격하여 기쁨을 금할 수 없습니다.…
-
경상도 관찰사 송천희가 칠원현에 갇힌 왜인 요시라의 자백 내용을 보고하다.
경상도 관찰사 송천희(宋千喜)가 치계하기를,
“칠원현(漆原縣)에 갇힌 왜인 요시라(要時羅)가 통사(通事)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영원히 조선 사람이 될 것이 틀림없으니 본도의 모든 일을 어찌 바로 말하지 않겠습니까. 전일 접전할 때 죽은 왜인의 자서제질…
-
부제학 권민수 등이 변방을 방비하고 오랑캐를 대우하는 방책에 대해 상소하다.
부제학 권민수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모든 일을 예정하면 성립되고 예정하지 않으면 폐기된다.’ 하였습니다. 천하의 사변이 무궁한데, 우리가 그 무궁함에 대비하는 것은 예정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기 전에 익히 헤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