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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원이 강화가 성립되면 왜적이 경성에서 왕자들을 석방하겠다고 했다고 아뢰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이 치계 하였다.
“지휘사 장서(張瑞) · 진승(陳昇) · 강필승(康必勝) · 반문(潘文) 등 4인이 함경도로부터 돌아와서 ‘본월 15일 적을 만나 강화하는데, 적이 「조선은 곧 우리 군사가 빼앗아 얻은 것이고 왕자 역시 우리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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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도장 최우가 풍상공이 안변부 왜적과 강화를 논의한 일을 보고하다.
중국 장수의 향도장(嚮導將) 최우(崔遇)가 치계 하였다.
“신들이 풍상공(馮相公)을 배행하고 안변부(安邊府)로 들어갔을 적에 적왜 4인이 먼저 와서 일행의 인마를 동문 밖에서 맞아들이더니, 이윽고 적의 괴수가 적왜 3인을 시켜 객사의 동헌에 와 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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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를 인견하여 양호의 방어, 농사의 권장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장차 제독이 있는 곳에 가게 되어 상이 인견하는데, 참찬관 홍진(洪進)도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좌상이 혼자서 수고해야 되겠다. 대군이 빨리 진병하지 않으면 민심이 괴리될 뿐 아니라, 농사가 전폐되고 군량도 이어대기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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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의주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송경략의 인품, 문답 내용 등을 듣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의주에서 돌아왔는데 상이 인견하고서 송경략(宋經略)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으니, 아뢰기를,
“그의 형모를 보니 그다지 장대하지는 않으나 다분히 영기는 있었습니다.”
하였다. 이어 계사를 써 올리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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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이 평양싸움에서 조선사람을 베어 수급을 바쳤다는 일을 해명하다.
중국의 이과급사(吏科給事) 양정란(楊廷蘭)이 상소하여 이제독(李提督)이 평양의 싸움에서 조선 사람을 잡아다 베어 수급을 바친 일을 논하자, 이제독이 글을 올려 스스로 해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조선에 주둔하며 군사와 말을 휴양하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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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병부에서 군량과 마초를 조달하는 일을 요청하다.
병부의 제본을 인해서 성지를 받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왜적의 많은 무리가 조선을 점거하여 요동 땅과 접하게 되었으니 내가 적이 문정까지 다가온 걱정 때문에 부득이 장수를 명하여 군사를 내어보낸 것이다. 마침 경략 송응창(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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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증 ․ 홍성민 등이 평양에서 돌아와 중국군의 진병에 대해 아뢰다.
아천군 이증(李增)이 평양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가지고 간 게첩을 역관 한윤보(韓潤輔)를 시켜 올리면서 ‘국왕께서 뜻밖에 노야가 사실 아닌 지탄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견디지 못하여 위문에 바쁜 나머지 먼저 게첩을 보내셨다. 주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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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량어사 강첨이 백성들이 잔폐하고 있다고 무휼하기를 청하다.
충청도운량어사 강첨(姜籤)이 치계하기를,
“군사를 일으킨 이래 부역이 날로 번다하여 백성들이 터전을 잡고 살 수가 없어서 열 집에 아홉 집은 비었고 게다가 난리가 일어난 뒤로는 열읍의 수령에 거의 무인을 임시로 차정했으므로 한갓 엄격하고 가혹하게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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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인이 장도사를 만나 군량의 수송을 논의하다.
접반사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어제 저녁에 장도사(張都司)가 차비역관(差備譯官)을 시켜 신을 부르기에 신이 곧장 달려갔더니, 장도사가 방 밖에 나와 서서 신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너희 나라의 일을 위하여 강을 건너 와서 체류한 지 지금 4개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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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원에 주정하여 이원익 등과 강화에 대한 중국측의 입장 등을 논의하다.
상이 부산원(斧山院)에서 주정하였는데, 본도 관찰사 이원익(李元翼)이 맞아 뵈었다. 상이 인견하니, 참찬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희수가 아뢰기를,
“어제 안정(安定) 길가에서 중국 관원의 행색을 멀리서 바라보았지만 누구인지를 몰랐는데, 관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