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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에서 올린 비변사의 계책을 의논하다.
처음에 병조에서 비변의 계책을 올리기를,
“1. 우리나라는 인물이 교화 속에 살고 있어, 낳고 나서 스스로 자라 백성이 날로 번성합니다. 각도 각 포(浦)에 병선을 비록 증가하여 건설하나, 군사가 아직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아직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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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충추원사 이사검이 비변책을 올리다.
동지중추원사 이사검(李思儉)이 비변책을 올리기를,
“1. 왜인들은 잠깐 신복(臣服)하다가 바로 배반한다 하는데, 우리의 해변에 섞여 살면서 우리의 허실을 엿보니 진실로 염려됩니다. 이제부터는 밀양(密陽) ․ 영산(靈山) 두 고을 중에서 마땅한 곳을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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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부 가망포에 만호를 두고, 또 별선을 증가하여 왜구를 대비케 하다.
의정부에서 병조의 정문에 따라 아뢰기를,
“경상도 김해부(金海府) 가망포(加忘浦)는 왜구가 들어오는 첫목 길로서 요해지이지만 검선(劒船) 4척만을 두었사오니, 혹시 왜적이 밤을 타서 엄습하게 되면, 좌편에서 원호할 다대포(多大浦)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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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이 본국에서 고기잡는 것에 관해 의논하라고 이르다.
임금이 우승지 이승손(李承孫)을 인견하고 이르기를,
“…… 옛적에 신라의 후예가 다대포(多大浦)에 가서 놀다가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의 대내전(大內殿)이 바로 그 후손이다. 이 까닭으로 태종조 때에 대마도의 왜인이 우리 국경에 들어와서 도둑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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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 등이 양계와 각 지역 연변의 방비 등에 대한 일을 아뢰다.
영의정 정인지(鄭麟趾) 등이 순찰사 박강(朴薑)과 구치관(具致寬)의 계본에 의거하여 의논하였는데, 의논은 이러하였다.
“여러 포는 밖의 번리(藩籬)이요, 여러 진은 다음의 번리입니다. 대저 촘촘하려고 한다면 성기게 하려고 하지 않는 법인데, 촘촘하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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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병마절도사 왕종신과 수군절도사 이인충이 요청한 덕도의 개간을 허락하다.
경상도 병마절도사 왕종신(王宗信)과 수군절도사 이인충(李仁忠)에게 하서하기를,
“이제 경의 계문으로 인하여 덕도(德島)는 삼면에 육수로 둘러싸여서 동쪽에는 다대포(多大浦)가 있고, 서쪽에는 안골포(安骨浦)가 있으나 절도의 비할 바가 아니고, 또 땅이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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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가 울산에 있는 수영을 다대포로 옮기기를 청하다.
경상도관찰사 김자정(金自貞)이 아뢰기를,
“좌도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가 모두 울산(蔚山) 땅에 있어서 백성의 폐단이 매우 큽니다. 청컨대 영변의 예에 의하여 울산을 도호부로 올려서 부사와 판관을 두되, 병마절도사에게 부사를 겸임하게 하고, 또 한 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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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순찰사 홍응이 여러 도 내 여러 포의 보에 대해 서계를 올리다.
사도순찰사 홍응(洪應)이 서계하기를,
“제도의 제포(諸浦)의 보를 설치한 곳 가운데에서 전라도 장흥(長興) 회령포(會寧浦)의 보를 설치한 곳은 좌지(坐地)가 남향인데, 포백척(布帛尺)시축(尸祝)신주(神主)와 제문(祭文).으로 재면 둘레가 1,990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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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들의 침략을 막지 못한 우현손 ․ 조익문 등을 추국하게 하다.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우현손(禹賢孫)·우후(虞侯) 조익문(曹益文)·순천부사(順天府使) 김수정(金守貞)·돌산포만호(突山浦萬戶) 임채(任採)는 방어하는 모든 일을 미리 조치하지 않아, 수적들이 다대포(多大浦)로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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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기가 군적의 폐단을 열거하여 아뢰었으나 병조의 청에 따라 시행하지 않기로 하다.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조숙기(曹淑沂)가 서계하기를,
“신이 본진에 있으면서 군적을 인해서 눈으로 본 한두 가지 폐단을 감히 잠자코 있지 못하고 신청을 모독합니다. ……
1. 좌도의 여러 포 영진은 거의가 육지와 잇대어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