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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서 장사하고 돌아가던 복건성 등지의 중국인이 진도의 도포에 표착하다.
표착한 중국 사람들은 북경(北京)에 압송하게 하였다. 이보다 앞서 이국 사람의 무리가 진도(珍島)의 도포에 표착하였는데, 물어 보니 곧 복건성(福建省)·강소성(江蘇省)·절강성(浙江省) 등지의 사람으로 일본에 가서 장사하고 돌아가다가 침몰한 자들이었으며, 무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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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와 최영이 군사를 징발하여 덕적도 등의 왜적을 방비하다.
신우(辛禑) 원년(1375) 을묘 9월, 왜적의 배가 덕적도(德積島)·자연도(紫燕島) 두 섬에 많이 모이니, 우왕(禑王)은 여러 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태조와 판삼사사(判三司事) 최영(崔瑩)으로 이를 거느리게 하고,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에 군대의 위엄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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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서해도에 침구한 왜적을 해주에서 격퇴하다.
8월, 왜적이 서해도(西海道)의 신주(信州)·문화(文化)·안악(安岳)·봉주(鳳州)를 침구하니 원수(元帥) 찬성(贊成) 양백익(梁伯益)·판개성부사(判開城府使) 나세지(羅世知)·문하(門下) 박보로(朴普老)·도순문사(都巡問使) 심덕부(沈德符) 등이 패전하여 장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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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 500척이 진포에 침입하자 태조가 왜장 아기발도를 죽이다.
신우(辛禑) 6년(1380) 경신 8월, 왜적의 배 500 척이 진포(鎭浦)에 배를 매어 두고 하삼도(下三道)에 들어와 침구하여 연해의 주군(州郡)을 도륙하고 불살라서 거의 다 없어지고,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시체가 산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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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 150척이 함주, 북원, 북청을 침구하니 태조가 격퇴하다.
9월, 명나라 사신 장부(張溥)·주탁(周倬) 등이 국경에 이르러서 태조와 이색(李穡)의 안부를 물었다. 이때 태조와 최영은 위명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으므로, 장부 등에게 이들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모두 밖에 나가 있었는데, 최영은 교외에 나가 둔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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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왜구침구를 이유로 요동정벌을 반대하다.
4월, 봉주(鳳州)에 머물렀다. 태조에게 이르기를,
“과인이 요동을 공격하고자 하니 경 등은 마땅히 힘을 다하라.”
하니, 태조가 아뢰기를,
“지금에 출사(出師)하는 일은 네 가지의 옳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에 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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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이 관직을 사양하면서 유구와 남만의 입공을 아뢰다.
좌시중 조준(趙浚)이 평양 식읍(食邑)과 경기도통사(京畿都統使)를 사면(辭免)하기를 청하였다. 그 전문은 이러하였다.
“신이 듣자옵건대, 은총과 이록(利祿)으로써 성공한 후에 그대로 있지 아니한 것이, 이윤(伊尹)이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그 임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