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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 박민헌 등이 대마도에 사신 보내는 일에 관해 차자하다.
대사간 박민헌(朴民獻)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제왕이 오랑캐를 방어함에 있어서는 사체에 맞는 것을 귀히 여기니, 오로지 무력만을 사용하여 회유하는 방도를 그르쳐서도 안 되며 약점을 보여 업신여김을 받아서도 안됩니다. 한때의 의논이 분분해서 따를 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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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인의 졸기에 어느 왜인이 영흥군을 일컬었다고 적다.
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김노(金輅) 등은 조정에 돌아왔으나, 경상도에 귀양간 이종학(李種學)·최을의(崔乙義)와 전라도에 귀양간 우홍수(禹洪壽)· 이숭인(李崇仁)·김진양(金震陽)·우홍명(禹洪命)과 양광도(楊廣道)에 귀양간 이확(李擴)과 강원도에 귀양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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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 60척이 영해의 축산도에서 투항해 오다.
왜구의 배 60척이 영해(寧海)의 축산도(丑山島)에 이르렀는데, 그 만호(萬戶) 임온(林溫) 등이 관찰사 한상질(韓尙質)에게 글월을 올려서 말하였다.
“우리들이 항복하고자 하오니, 만일 귀국에서 변방 한 곳을 허급(許給)하고 또 식량을 주면, 우리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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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이 왜괴의 아들 동시라 등 2인을 데리고 계림에서 오다.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유양(柳亮)이 왜괴(倭魁)의 아들 동시라(童時羅) 등 2인을 거느리고 계림(雞林)으로부터 오니, 동시라에게 옷을 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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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관이 항왜의 처리를 잘못한 유양을 국문할 것을 상소하다.
간관이 상소하였는데, 대략은 이러하였다.
“그윽이 보건대,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유양(柳亮)이 전에 계림(雞林)에 있을 때에, 왜구가 투항할 즈음을 당하여 단기(單騎)로 가서 적을 보고 화복으로 달래어, 왜노(倭奴)로 하여금 자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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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남은 ․ 박위 ․ 유만수의 졸기에 왜에 관해 적다.
정도전의 자(字)는 종지(宗之), 호(號)는 삼봉(三峰)이며, 본관(本貫)은 안동봉화(安東奉化)이니, 형부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다. ……
임금을 따라 동북면에 이르렀는데, 도전이 호령이 엄숙하고 군대가 정제(整齊)된 것을 보고 나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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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이 대마도 수호 도도웅와에게 교화에 응할 것을 교유하다.
상왕이 병조판서 조말생에게 명하여, 대마도 수호 도도웅와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본조가 계하여 선지를 받들어 이르노니, 거기에 이르기를, ‘하늘이 이 백성을 내실 때에 기운으로 형체를 이룩하고, 이치도 또한 품부하여 주었으니, 착한 일을 하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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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가 태어나고 국호를 계림으로 하다.
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나무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날이 샐 무렵에 호공(瓠公)을 보내 어찌된 일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가보니 그 곳에는 나무 가지에 금빛 나는 작은 상자가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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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국
신라의 국토 경계에 대하여는 옛날 기록들의 내용이 동일하지 않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통전(通典)당(唐)나라의 재상(宰相) 두우(杜佑:735~812)가 편찬한 제도사(制度史)이다. 766년에 착수하여 30여 년에 걸쳐 초고(初稿)가 완성되고, 그 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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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왕【혹은 나밀왕이라고 함】과 김제상.
제17대 나밀왕(那密王)이 즉위한지 36년 경인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우리임금이 대왕의 신성함을 듣고 신등으로 하여금 백제의 죄를 대왕께 고하였으니 대왕은 왕자 한분을 보내어 우리 임금에게 성의를 표하소서.”
하였다. 이에 왕이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