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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통사 윤인보와 그의 아우 윤인시, 왜노 3명을 의금부에 가두다.
왜통사 윤인보(尹仁甫)와 그의 아우 윤인시(尹仁始)와 그의 집에 있는 왜노 3명을 의금부에 가두고, 영의정 유정현과 참찬 안순(安純)․병조판서 조말생․대사헌 하연․형조판서 권진(權軫)․동부대언(同副代言) 정흠지(鄭欽之)․우사간(右司諫) 박관(朴冠)을 보내어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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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생을 삼도도순문사로 삼아 각 고을의 성보를 심정하게 하다.
판중추원사 조말생(趙末生)으로 경상․전라․충청 삼도도순문사(三道都巡問使)를 삼아, 각 고을의 성보를 심정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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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덕이 면천산성보다 서천성을 먼저 쌓을 것을 상언하다.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최윤덕(崔閏德)이 상언하기를,
“이제 면천산성(沔川山城)은 그 내부가 험하고 또 크다는 이유로 읍성으로 개축하고 있습니다. 대저 면천 밖에는 좌도도만호(左道都萬戶), 파지도만호(波知島萬戶), 탄지도만호(灘知島萬戶), 대진만호(大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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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연 이상에서 간관까지 시강하게 할 것 등에 관한 사간원의 상소문.
사간원에서 상소하기를, ……
“…… 1. 요해지에 방비 시설을 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은 ≪주역(周易)≫의 밝은 훈계이옵니다. 이제 각도의 성(城)을 도순찰사에게 명하여 두루 살펴본 뒤에야 수축하게 하시오니, 이것은 진실로 평안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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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 전라 ․ 경상도 도순문사 조말생이 적량의 병선을 지도포에 옮길것을 아뢰다.
충청․전라․경상도 도순문사 조말생(趙末生)이 아뢰기를,
“경상도 남해현(南海縣) 적량(赤梁)에 강어구가 협착하여 방어하기에 마땅하지 아니하오니, 적량의 병선을 지도포(池島浦)에 옮기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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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현을 남양에 합속시키는 문제를 논의하다.
이조에서 전라도 남양현(南陽縣) 경재소(京在所)의 고장(告狀)에 의거하여 의정부에 보고하기를,
“지금 고흥현(高興縣)이 남양에 합속하여 남양현이 본현의 치소(治所)가 되는데, 그 칭호에는 남양의 명호가 비치지 않았으니, 청하옵건대 다른 군현의 칭호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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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진을 설치하다.
고흥현(高興縣)을 봉황암(鳳凰巖)의 서쪽으로 옮기고, 또 보성(寶城)의 임내(任內) 남양(南陽)․태강(泰江)을 떼어 붙여 이름을 흥양(興陽)이라 고치고, 동시에 진을 설치하니, 호구(戶口)가 730인이요, 전토(田土)가 4,146결이었다. 이 앞서 도순찰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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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사신을 보내는 일을 의논하다.
예문대제학(藝文大提學) 조말생(趙末生)․호조판서 박종우(朴從愚)․동지중추원사 이명덕(李明德)․병조판서 정연(鄭淵)․판한성부사 한확(韓確)․이조판서 박안신(朴安臣)․예조판서 김종서(金宗瑞)․형조판서 안숭선(安崇善)․병조참판 신인손(辛引孫)․한성부윤 황치신(黃致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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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졸 훈련과 징병에 대하여 대신들과 의논하다.
의정부 우찬성(右贊成) 김종서(金宗瑞)가 상서하기를,
“우리 국가는 정치와 교화가 바르고 밝아 다스림에 필요한 일이 모두 잘 베풀어졌사오며 가히 말씀 드릴 것이 없사오나, 오직 병사(兵事)의 한 가지 일뿐이옵니다. 병가(兵家)에서 말하기를, ‘백성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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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지 정이한이 우리나라는 삼면이 해변이라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보를 수축할 것을 청하다.
우찬성(右贊成) 정분(鄭苯)을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도체찰사로 삼고, 성균관 사예 김순(金淳)과 이조정랑 신영손(辛永孫)을 종사관으로 삼아 연변 주현의 성터를 살펴서 정하게 하였다. 처음에 좌승지 정이한(鄭而漢)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