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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가 해주진의 설치를 제의하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영사(領事)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
“세조(世祖) 때에 구치관(具致寬) · 박강(朴薑) 등을 시켜 하삼도(下三道)를 순찰하게 해서 연해의 모든 진(鎭) 중에서 긴요하지 않은 것은 폐지하게 하셨습니다. 신이 무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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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진의 설치에 대해 의논하게 하다.
명해서 해주(海州)에 진을 두는 것이 적당한 지를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이 의견을 아뢰기를,
“해주는 바다 어귀의 요해지이므로 진을 두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만일 큰 진을 두려면 먼저 유방(留防)하는 군사의 수를 의논하여 하는데, 본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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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들과 평안도 관찰사 ․ 절도사를 불러 중국의 청병 문제를 논의하다.
명하여 일찍이 정승을 지낸 이와 의정부·병조 및 일찍이 평안도의 관찰사·절도사를 지낸 이를 불러서 전교하기를,
“듣건대 중국에서 장차 우리에게 청병하여 건주위(建州衛)를 치려고 한다 하니, 뽑을 군사의 수와 양식의 운반, 척후의 적당한 대책을 함께 의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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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조가 원군과 함께 일본 정벌에 참여하고, 충렬왕을 알현하다.
18년(1281) 신사에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하니, 천하의 병선이 합포(合浦)에 모였다. 익조(翼祖)가 상사(上司)의 문자를 받아, 본소(本所)의 인호(人戶)에 군인을 기명하여 뽑아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삼살천호(三撒千戶)와 몽고의 대탑실(大塔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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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성에 그전과 같이 고려에 행정동성사의 사업을 전적으로 위임할 것을 청하다.
이해에 요양성(遼陽省)이 황제에게 보고하여 정동(征東), 요양의 두 성을 한 개의 성으로 통합하고 관청은 동경(東京)으로 옮겨 두자고 요청하였으므로 왕이 황제에게 글을 보내 건의하기를,
“말을 아무리 교묘하게 분식하여도 황제가 들으면 반드시 사실대로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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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 권부 등이 왕의 복위 문제에 관한 서면을 행성에 보내다.
기로 권보(權溥) 등이 행성에 상서하기를,
“…… 이에 온 천하에서 원방 사람들이 모두 원나라에 복종한 것을 목격하였고 천명(天命)이 원나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세조를 위하여 진력한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귀국의 세조황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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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수비를 하게 하는 외에는 도진무사를 모두 폐지하기를 청하다.
정당문학(政堂文學)정당문학(政堂文學)고려와 조선시대 국가 행정을 총괄하던 관직이다. 1275년(충렬왕 1) 중서문하성이 첨의부(僉議府)로 개편되면서 참문학사(參文學事)로 개칭되었으나 1290년에 다시 정당문학으로 고쳤다. 이인복(李仁復)을 원나라에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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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창릉에 들어와서 세조의 초상을 훔쳐 가지고 돌아가다.
…… 왜적이 창릉(昌陵)에 들어와서 세조(世祖)의 초상을 훔쳐 가지고 돌아갔다. 김속명(金續命)을 동서강(東西江)도지휘사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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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
박구(朴球)는 울주(蔚州) 소속의 부곡(部曲) 사람인데 그의 조상은 부유한 상인이었다. 박구는 그의 자산을 물려받았으므로 세상에서 대단한 부자로 알려졌다. …… 그 후 여러 번 조동되어 밀직부사로 되었는데 세조(世祖)가 일본 정벌을 하려고 하였을 때 왕이 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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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
…… 유청신(柳淸臣)과 오잠(吳潛)이 원나라 정부에 상서하여 우리나라를 한 성(省)으로 만들어 중국 본토에 병합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제현(李齊賢)이 글을 지어 원나라 정부에 보내기를,
“…… 생각컨대 우리나라는 태조 왕씨가 개국한 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