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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가족을 피난시킨 관원들의 처벌, 전황 전달 체계의 정비 등을 건의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국운이 불행하여 6년 동안을 적과 대치하고 있으므로 군신 상하가 모두 창을 베개 삼고 분투 노력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사대부들은 약간의 소동만 있어도 종묘 사직의 위급함은 생각지도 않고 곧장 도망갈 계책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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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성 김우옹이 한강 방어의 계책을 아뢰다.
대사성 김우옹(金宇顒)이 아뢰기를,
“왜적의 기세가 이미 임박하였는데 서울은 넓고 커서 방어하기에 든든하지 못하니, 강 연안에 열을 지어 지키는 것이 형세상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안위와 성패가 강을 방어하는 데에서 결판날 것인데 다만 최원(崔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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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풍중영이 게첩을 보내다.
지휘 풍중영(馮仲纓)이 게첩을 보냈는데, 다음과 같다.
“제가 한성에 도착한 지 20일이 넘었습니다. 전하께서 제가 지난날에 공로가 없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즉시 사신을 보내어 예를 갖추심에 제가 비록 공손히 받기는 하였으나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 실로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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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납 유몽인이 군문 군량독촉문에 대해 아뢰다.
헌납 유몽인(柳夢寅)이 아뢰기를,
“신이 군량을 독찰하는 일 때문에 오늘 전교를 들은 뒤 곧바로 남이공(南以恭) 등과 함께 군문에 가서 분부를 들으려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접반부사 노직(盧稷)이 ‘어제 군문이 군량을 재촉하는 관원을 차송했는지의 여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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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접반사 노직이 동제독의 왜군에 대한 공격에 대해 아뢰다.
군문접반사 노직(盧稷)이 아뢰기를,
“중로차관(中路差官)이 와서 말하기를 ‘지난 28일에 동제독(董提督)이 들어가 사천(泗川)을 공격하여 80여 명을 참획하니 나머지 왜적은 달아나 신채로 들어갔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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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국 군사를 본국에 보내는 일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피폐한 중국 군사를 먼저 보내는 일에 대해서 접반사 노직(盧稷)이 중군을 만나 조정에서 상의한 것을 말하자, 중군이 말하기를 ‘피폐한 군사뿐만 아니라 근간에 5일마다 한 부대씩 편성하여 차례차례 돌아갈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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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도감이 모유격의 공로에 대해 아뢰다.
군문도감이 아뢰기를,
“사세용(史世用)이 신 노직(盧稷)에게 말하기를 ‘오늘날의 일은 나와 모유격(茅遊擊)의 공로인 것이다. 동제독(董提督)이 패군한 뒤에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는데, 그 다음날 나는 즉시 적진에 들어가서 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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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진제독의 아문에 거둥하다.
상이 진제독(陳提督)의 아문에 거둥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제 3만의 병력을 남겨 두려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겠는가? 그리고 수륙병을 얼마나 남겨 둬야 하느냐고 하면 또한 어떻게 대답해야겠는가?”
하니, 이덕형(李徳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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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직을 대사성으로, 이철을 호조참의로, 허성을 영흥부사로 삼다.
노직(盧稷)을 대사성으로, 이철(李鉄)을 호조참의로, 허성(許筬)을【사림(士林)을 모해하고 화의를 찬성하여 마침내 남북의 화를 빚어냈으니 이른바 ‘당신의 나라에 해를 끼친다.’ 는 것이 이 사람이 아니겠는가.】영흥부사(永興府使)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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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접반사 노직이 대중군의 말로써 아뢰다.
군문접반사 노직(盧稷)이 아뢰기를,
“대중군(戴中軍)이【대연춘(戴延春)】오늘 아침에 신을 불러 말하기를 ‘노야(老爺)가 경보를 보고 이르기를 「섬서의 경왕(慶王)은 건청궁과 곤령궁의 건조를 위하여 공역을 돕고, 양응룡(楊應竜)은 토관인데도 코끼리를 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