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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이 노자 동반, 사행의 수검, 왜와의 문답 등에 관해 아뢰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이 아뢰기를,
“신이 대동할 군관·역관·의원·화원·사자관들은 모두 직을 가진 의관의 사람들로서 멀리 이역에 가니, 사실 부경의 편리하고 가까운 것에 비길 바 아닙니다. 노자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적들이 보기에 극히 매몰스러울 뿐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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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길 ․ 경섬 등이 일본에서 돌아오다.
여우길(呂祐吉)·경섬(慶暹)·정호관(丁好寬)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사신은 논한다. 당초 원수 나라에 사신을 보낸 것은 참으로 부득이했기 때문이었다. 사신이 된 자는 마땅히 기지를 발휘하여 적정을 탐색하고 의를 지켜 국체를 존중하여 미리 간악한 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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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섬 ․ 여우길 ․ 박진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경섬(慶暹)을 승정원 동부승지로,【일본을 왕래한 노고에 보답한 것이다.】여우길(呂祐吉)을 동지중추부사로 삼았다.【일본을 왕래할 때 상사(上使)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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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 ․ 경섬, 서장관 정호관 등을 일본에 파견하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경섬(慶暹), 서장관 정호관(丁好寬)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원가강(源家康)이 신사를 여러 번 청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은 사행의 명칭 붙이는 것을 어렵게 여겨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가강이 서계를 보내 굳이 청하므로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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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에 쇄환사를 겸칭하도록 명하다.
회답사에 쇄환사를 겸칭하도록 명하였다. 여우길(呂祐吉) 등이 떠난 후에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전후 성교를 보건대 사신의 행차에 우리나라 피로인들을 모두 쇄환코자 한다 하였습니다. 무릇 이를 보고 듣는 자로서 누군들 감격치 않겠습니까. 구구하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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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면서 포획되었던 남녀를 쇄환하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면서 포로가 되었던 남녀 1,240여 명을 쇄환하였다. 그런데 우길이 가져온 일본 국서에는 전면에 원수충(源秀忠)【가강(家康)의 아들이다.】이라고만 쓰고 국왕을 쓰지 않았으며, 또 예조에 답한 서계에는 우리나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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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병오년 회답사가 배사할 때, 하교한 말과 물품을 서계하도록 전교하다.
전교하기를,
“병오년에 회답사가 배사할 때 선조가 하교한 말 및 상사·부사·종사관에게 내려준 물품을, 그 당시에 사신으로 갔던 여우길(呂祐吉)과 경섬(慶暹)으로 하여금 일일이 서계하게 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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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왜 귤지정이 관백의 서계를 가지고 와서 수호를 요청하고 사신을 보내주기를 청하다.
대마도의 왜 귤지정(橘智正)이 관백(關白)의 서계를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수호를 요청하고 또 사신을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오윤겸(吳允謙) 등을 회답사로 보내었으며, 인하여 천조에 주문하였다. 그 자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은 왜정에 관계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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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승 현방이 내빙하다.
〈일본에서 중 현방(玄方)이 내빙하였다.【처음에 수길(秀吉)이 죽자 그의 아들 수뢰(秀賴)가 대신 들어섰는데, 그의 신하 가강(家康)이 찬위하고는 수뢰와 싸워 크게 이겨 드디어 관백(關白)이 되었다. 관백이란 바로 대장군이고 국왕은 아니다. 기유년에 현소(玄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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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시에 왜적에게서 도망한 강항과 왜적을 무찌른 김덕령을 당상에 추중하도록 하다.
고 유신 교리 김인후(金麟厚)를 이조판서에, 절사인 좌랑 강항(姜沆)과 의병장인 좌랑 김덕령(金德齡)을 제조의 참의에 추증하였다. …… 강항은 영광에 살았으며 글재주가 있어서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였다. 정유년에 형조좌랑으로서 재신 이광정(李光庭)의 종사관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