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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병사 이시언이 적과의 접전 상황과 전과를 장계로 보고하다.
충청병사 이시언(李時言)이 장계하기를,
“9월 21일 상주(尙州)의 왜적이 그 막사를 불사르고 모두 낙동강 길로 나가므로 신이 방어사 박명현(朴名賢)·평안병사 이경준(李慶濬)·조방장 이영남(李英男) 등과 함께 달려가니 왜적은 이미 강을 건너갔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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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병사 이신언이 비안 현감유옥의 전과를 보고하다.
충청병사 이시언(李時言)이 장계하기를,
“비안현감(比安縣監) 유옥(柳沃)이 그 군사 100여 명을 거느리고 숲속에 숨었다가 4명의 머리를 베었으므로 차고 있던 환도를 머리를 벤 사람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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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병사 이시언이 사로잡은 왜적 복전감개의 공초내용.
충청병사 이시언(李時言)이 사로잡은 왜적 복전감개(福田勘介)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아비는 전 국왕의 장수였는데 관백(關白)이 찬탈할 때 피살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를 혐오하여 쫓아내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군사 1백여 명을 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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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제독 마귀를 전송하다.
상이 숭례문 밖에 나가 마제독(麻提督)을 전송하려는데, 정언 이이첨(李爾瞻)이 와서 아뢰기를,
“마제독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참으로 국가의 성패와 존망이 관계되는 바로서 다른 장관들의 행군과 같지 않습니다. 상께서 문외에서 전송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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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남원에서부터 서울에 이르는 파발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경리의 분부가 매우 급한데 우리나라의 일처리는 느릴 뿐만이 아닙니다. 직산(稷山) 이하가 새로 병화를 입어 관리가 흩어져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파발들이 왜적의 실정을 보고하는 일까지도 모두 제때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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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 고경명 ․ 정기룡 등의 부대를 적절히 배치하여 적과 대응토록 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평안 · 황해 · 함경 · 강원 · 경기 다섯 도의 징병에 관한 일은 벌써 글을 내보냈습니다. 경기는 호위군을 삼아야 하므로 삼영에 분배하는 유에 들지 않으나, 그 나머지 황해도 군병 2천명, 평안도 군병 2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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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이 남하할 때 조선병마를 삼영으로 나누어 소속시키다.
명장이 남하할 적에 우리나라의 병마를 삼영으로 나누어 소속시켜서 명장과 협조하도록 딸려 보냈다. 제 1영은 충청도 병마절도사 이시언(李時言)으로 2,000명을 거느리게 하였는데 평안도 군병 2,000명을 소속시켰고, 제 2영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성윤문(成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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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총병부에 적군의 동태와 대비책, 우리 장수의 전과를 알리게 하다.
제독총병부(堤督摠兵府)에 이자하였다.
“조선국왕은 왜적의 정세가 긴급한 일로 자문을 보냅니다. 본년 10월 28일에 접수한흠차제독남북수륙관병어왜총병관후군제독부도독동지 마(麻)의 자문에 ‘흠차총독경략군무병부상서 형(邢)의 헌패(憲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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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우수사가 왜군 앞잡이인 향리 사노 등의 실상과 그 처단법을 아뢰다.
전라우수사 이시언(李時言)이 치계하기를,
“해남(海南) · 강진(康津) · 장흥(長興) · 보성(寶城) · 무안(務安) 등의 고을은 인민이 거의 다 적에게 붙어 사족의 피난처를 일일이 가르쳐 주어, 거의 다 살륙되었습니다. 해남의 노직향리(老職鄕吏)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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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윤형, 충청절도사 이시언이 적과의 전투상황을 보고하다.
정유년 12월 30일 성첩한 접반사 윤형(尹泂)과 충청도절도사 이시언(李時言)의 치계는 다음과 같았다.
“이 달 24일 아침에 총병이 고도독(高都督)과 함께 군사를 출동시켜 울산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주둔시켰습니다. 좌협의 군사가 이미 적과 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