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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수 권율을 인견하고 적의 형세에 관해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행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 좌의정 김응남(金應南), 도원수 권율(權慄)을 인견하였는데, 우승지 김신원(金信元), 가주서(仮注書) 권진(權縉)·심집(沈諿), 검열(檢閱) 정홍익(鄭弘翼)·이필영(李必榮) 등이 입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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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낭중이 시어소에 와서 회사하자 주연을 베풀다.
동낭중(董郞中)이 시어소(時御所)에 와서 회사하니, 상이 술을 청하였다. 낭중이 말하기를,
“벌써 중춘이 되어 얼음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운량책은 오직 선함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어제 군문과 장책을 상의하여 결정했는데 해방도(解放道)에 이자하여 수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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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성영이 임진난 때 자신의 불효 ․ 불충을 들어 파직을 청하다.
대사헌 성영(成泳)이 아뢰기를,
“신이 임진왜란 당시 아비 상을 당하여 광주(廣州) · 여주(驪州) 지역에 있다가 갑자기 대적이 침범해 옥여가 서쪽으로 행했다는 소식을 듣고 길이 멀어 뒤따를 수가 없어 서쪽을 향해 두 번 절하니 눈물이 비오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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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가 모래재를 넘다.
평명(平明)에 거가가 모래재를 넘었다. 이날 많은 비가 내렸는데 경기감사 권징(權徵)이 뒤따라 와서 입고 있던 우의를 바쳤다.【이에 앞서 도성 안의 동요(童謠)에, 경기감사는 우장(雨裝)과 직령(直領)에 큰 인끈을 달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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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보를 이조판서로 삼고, 한응인을 제도 순찰사로 삼아 임진에 주둔케 하다.
이산보(李山甫)를 이조판서로, 이항복(李恒福)을 이조참판으로 삼고, 한응인(韓應寅)을 제도 순찰사로 삼아 임진(臨津)에 나아가 주둔하게 하였다. 적이 경성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 군사를 휴식시켰는데, 도로에 와전되기를 ‘왜인들이 멀리서 오느라 발이 부르트고 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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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 청정이 관북에 침입하다.
왜장 청정(淸正)이 관북에 침입하여 함경감사 유영립(柳永立)이 사로잡히고 병사 이혼(李渾)이 적민에게 살해당하였다. 당초에 청정과 행장(行長) 등이 함께 임진강을 건너 상의 행차를 추격하면서 거가가 혹시라도 방향을 바꾸어 관북으로 갈 것을 염려하여 길을 나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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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참의 이정암이 해서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전 참의 이정암(李廷馣)이 해서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왕세자가 서압하여 초토사로 삼아 연안성(延安城)을 지키게 하였다. 당초에 정암이 대가가 장차 서쪽으로 행차한다는 소문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어미에게 작별하며 말하기를 ‘국가의 녹을 먹는 자로서 이러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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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략과 제독 이여송이 안주 ․ 파주에서 싸우다가 패한 뒤 개성에 주둔하다.
송경략(宋經略)은 안주(安州)에 진주하고 제독 이여송(李如松)은 파주(坡州)에 진군하여 벽제역(碧蹄驛)에서 싸우다가 불리하자 후퇴하여 개성에 주둔하였다.
제독이 대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유성룡(柳成龍)이 먼저 가서 군량과 마초를 서둘러 마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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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이여송이 도로 평양에 머물다.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도로 평양에 머물렀다.
제독이 오래도록 개성에 머물면서 군량이 떨어져 가는데도 전진할 생각은 없이 자주 사람을 경략에게 보냈는데, 이는 대개 전일의 화의를 계속해 보려는 것이었다. 때마침 와언이 있어 ‘적장 청정(淸正)이 장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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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학 유생 이목 등이 임진왜란 때 성혼의 원통함을 풀어줄 것을 상소하다.
관학 유생 이목(李莯) 등이 세 번째 상소하여 성혼(成渾)의 원통함을 풀어줄 것에 대해 청하였다. 그 대략에,
“삼가 생각건대, 성혼은 큰 어진이로서 어찌 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군신의 의리를 알지 못하여 대가가 자기의 사는 곳을 지나는데 좌시하고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