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군 각영의 영병 수목을 기록하다.
중국군 각영 영병의 수목은 다음과 같다.
흠차제독계요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군무총병관중군도독부도독동지(欽差提督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軍務摠兵官中軍都督府都督同知)이여송(李如松)의 표하중군원임참장도지휘첨사(標下中軍原任參將都指揮僉事) 방시춘(方時春)이 통령하는 관하…
-
호조가 이제독과 3대장 등에게 봄옷감을 나누어 주는 일을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이제독(李提督) 및 3대장·중군·제장 등의 봄옷감을 나누어 주라고 전교하였습니다. 여러 장수들은 총 63원인데 이미 돌아간 자 및 북도를 들어간 사람을 제외하고 군중에 현재 남아있는 자는 47인입니다. 각기 토산…
-
부산원에 주정하여 이원익 등과 강화에 대한 중국측의 입장 등을 논의하다.
상이 부산원(斧山院)에서 주정하였는데, 본도 관찰사 이원익(李元翼)이 맞아 뵈었다. 상이 인견하니, 참찬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희수가 아뢰기를,
“어제 안정(安定) 길가에서 중국 관원의 행색을 멀리서 바라보았지만 누구인지를 몰랐는데, 관사에 …
-
유성룡이 심유격이 왜장과 강화 협상을 하였다고 보고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 하였다.
“김지귀(金志貴) 및 본국역관 김선경(金善慶)이 용산(龍山)에서 배편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심유격(沈遊擊)은 강화의 길을 택하여 바로 개성으로 향하였고 또 오종도(吳宗道)라는 자도 용산에서 달려갔는데 …
-
윤근수가 심경략이 사용재와 서일관을 일본에 보냈다고 치계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치계 하였다.
“송경략(宋經略)이 어제 사용재(謝用梓)와 서일관(徐一貫)에게 명하면서 그들에게 각각 참장(參將)·유격(遊擊)의 관명을 임시로 주어 왜노를 따라 바로 일본에 가게 하였고 심유격(沈遊擊)은 부산진까지 갔다가 돌아오…
-
유성룡 등이 기패에 고두례를 행하지 않은 일, 심유경이 왜적과 만난 일을 아뢰다.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치계 하였다.
“신들이 어제 파주(坡州)에 가서 권율(權慄)과 군사를 약속하고 있는데, 참장(參將) 주홍모(周弘謀)와 기패관(旗牌官) 주조원(朱朝元)이 군사 300여 명을 거느리고 군악대를 앞세우고 도…
-
고양겸이 왜의 항복과 중국군의 조선 지원에 대한 내용의 패문을 보내다.
흠차방해어왜병부좌시랑도어사(欽差防海禦倭兵部左侍郞都御史) 고양겸(顧養謙)의 패문에,
“일본추수 관백(關白)이 왜장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나와서 항복하기를 애걸하였는데, 본부원에서 그 정형을 살펴보니 진실이었고 거짓이 없었다. 다만 부산 일대는 왜노가 아…
-
대신 등을 인견하여 왜적에 대한 보고 ․ 중국군 군량 운반 ․ 진휼 상황 등을 논의하다.
…… 상이 이르기를,
“전일 변보에 왜적이 앞으로 경주(慶州)를 침범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후로는 보고가 없다. 이제부터는 자주 탐문하고 원수도 자주 보고해야 할 것인데 양쪽 소식이 단절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
병조판서 이덕형이 중국 장수를 사례한 일과 왜적이 동래에 거주한다는 설을 중국에 해명할 것을 건의하다.
병조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저녁에 궐내에서 내려 준 선물을 가지고 교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 근방의 빈 집에 주찬을 차려놓고 초청하여 위로의 말을 하였더니 두 사람이 기뻐하며 극구 사례하였습니다.
…
-
영의정 유성룡이 왜와 교섭하는 중국의 태도가 일관성도 없고 적절하지도 않다고 하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신이 김명원(金命元)과 함께 주유격(周遊擊)을 찾아가 만나서 이야기 끝에 인하여 말하기를 ‘심유경(沈惟敬)이 이미 중국 조정에서 봉작과 조공을 허락하였다고 왜노에게 말하여 주었다는데, 지금 노야(老爺)가 소서행장(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