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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군사를 농사에만 힘쓰게 한 것을 시정하도록 변계량이 건의하다.
정사를 보았다. 판부사 변계량이 계하기를,
“시위군사를 설치한 것은 밖을 방어하고 안을 호위하여 불의의 사변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인데, 요사이 국내외가 무사하다고 하여 외방의 시위 군사들을 혹은 농사철로 인하여, 혹은 흉년으로 인하여, 혹은 추위와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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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신을 광주의 처소에 가서 위로하게 하다.
임금이 대언 등에게 말하기를,
“지금 일본국왕의 사자를 대우하는 예가 내 생각에는 박하다고 생각된다. 애초에 일본사자가 서울에 머물러 있고자 한 것을 대신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중국의 사신이 마침 오는데 만약 우리가 일본과 사귀어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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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황제가 동맹가첩목아에게 내린 칙서에 관해 말하다.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말하기를, …… 임금이 또 말하기를,
“자제들을 보내어서 입학하는 일은 내가 매양 생각하니, 부모처자와 서로 이별하는 정은 진실로 참을 수 없는 일이나, 그러나 우리나라가 중국과 사귀는 데에 요긴한 것은 오로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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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중국인 관음보를 돌려 보내는 문제로 의논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종금(宗金)이 데리고 온 중국인 관음보(觀音保)가 말하기를, ‘본디 금산위(金山衛)에 살았었는데 14세 때에 사로잡히어 화가도(花加島)에 이르러 머물러 있는 지가 30여 년이 되옵는데, 고향이 그리워서 종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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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신도비문에 왜방과의 교린을 적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신(臣) 변계량(卞季良)에게 명하여 신도비문(神道碑文)을 찬(撰)하게 하였다. 그 글은 이러하였다. ……
“교린(交隣)함에 도가 있으니, 왜방(倭邦)이 내정하였네. 왕씨후예(王氏後裔)를 불상히 여겨 그 생업을 이루게 하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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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 2품 이상에게 왜인의 처분을 의논하게 하다.
전번에 시산(時散) 2품 이상을 명하여, 왜인을 처분하여 나누어 둘 것의 가부를 의논하게 하였다. 홍여방 등은 말하기를,
“부녀자 이외는 다 죽이소서.”
하고, 민여익 등은 말하기를,
“건장한 자는 다 죽이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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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이 대마도에서 패군할 때의 상황을 알고 있는 중국인을 돌려보내는 문제를 논의하다.
좌의정 박은이 계하기를,
“좌군절제사 박실이 대마도에서 패군할 때 호위하던 한인 송관동(宋官童) 등 11명이 우리 군사가 패하게 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중국에 돌려보내서 우리 나라의 약점을 보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니, 우의정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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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감사 정진이 대마도 정벌 나간 염한들의 공납 탕감에 대해 장계하다.
충청도감사 정진(鄭津)이 장계하기를,
“각 고을의 염한(鹽漢)들이 대마도 정벌에 나갔으므로, 소금을 굽지 못하였으니, 소금의 공납을 반감하여 주십시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꼭 반만 감하자 하느냐. 금년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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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에서 박실의 패군 원인이 이종무 등에게도 있음을 아뢰니 면죄시키도록 하다.
의금부 제조 변계량 등이 수강궁에 가서 아뢰기를,
“어제 명령을 듣고 박실의 패군한 죄를 국문하오니, 실이 공술하기를, ‘이종무가 처음에는 삼군 삼절제사에게 명령하여, 다 육지에 내려서 싸우라고 하더니, 뒤에 명령을 변경하여, 삼군 절제사 각 1사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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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수강궁에서 대마도 재정벌을 논의하다.
임금이 수강궁에 문안하고 술자리를 차리고, 유정현·박은·이원·변계량·허조·조말생·신상(申商)들이 입시하였다. 상왕이 정현 등에게 은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전일 대마도를 정벌했을 때, 갑사 5, 6인이 왜적에게 사로잡히고 돌아오지 않았소. 이제 도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