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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 보내는 주문에 왜구의 작란과 가왜에 관해 적다.
조정의 사신 김인보(金仁甫)·장부개(張夫介)가 돌아가니, 임금이 주본(奏本) 1통을 지어서 부쳐 올리고,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에 이르러 전송하였다. 그 주문은 이러하였다.
“…… 신의 선대는 본래 조선의 유종(遺種)인데, 신의 22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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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잡다가 표류해 온 중국배를 후하게 위로하고 돌려보내다.
중국 배[唐船] 4척이 표류하여 연변 고을에 이르렀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위로해 보냈다. 명나라 진남위후소(鎭南衛後所) 백호(百戶) 유귀(柳貴) 등 3인과 기군(旗軍) 117명이 바람에 표류하여 전라도 옥구(沃溝)에 이르렀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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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이 왜정에 관한 일로 자문을 보내다.
조선 국왕이 왜정에 관한 일로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본년 4월 16일에 요동 도지휘사사가 앞서의 일에 대해 보낸 자문을 접수하였습니다. 당직이 살피건대, 유격이 선유한 후부터 각진에 주둔한 왜병이 점차 철거하며 영책을 태워버린 것도 이미 9곳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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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에서 3만 3천 병마의 반년 양료에 대한 대책을 아뢰다.
호조가 아뢰기를,
“지금 비변사가 계하받은 공사로 인해 3만 3천 병마의 반년 양료를 마련하니, 군사 1인당 쌀이 3승이고 말 1필당 콩이 5승으로 1일의 지출을 통계하면 쌀이 660석이고 콩이 1천 1백석이며, 1개월분을 통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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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 심희수 등 대신들이 군량문제 등 왕동지와의 대화 내용을 아뢰다.
대신들이 아뢰었다.
“신들이 호조판서 심희수(沈喜壽), 병조참판
한효순(韓孝純)과 함께 가서 왕동지(王同知)를 만나 길에서 고생하였다는 뜻으로 위로하였더니 매우 감사하다고 답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대군이 장차 나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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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김응남이 김명원과 함께 진유격을 만나 나눈 대화내용을 아뢰다.
좌의정 김응남(金應南)이 아뢰었다.
“신과 김명원(金命元)이 진유격(陳遊擊)을 보러 가서 말하기를 ‘국왕은 기후가 편찮아서 지금 침을 맞는 중이므로 접견하는 예를 행하지 못하는 것을 지극히 미안하게 여겨 우리를 시켜 문안하게 하였다.’ 하고, 이어서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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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섭유격과 권려가와 모곡 등에 대해 나눈 대화를 아뢰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오늘 이덕형(李德馨) 등이【홍진(洪進)·김찬(金瓚)·구사맹(具思孟)·윤승훈(尹承勳)】섭유격(葉遊擊)의 거처에 가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였습니다. 섭유격이 말하기를 ‘책봉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군이 나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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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 방어에 필요한 취량 ․ 액향에 관한 중국 호부의 제본이 오다.
호부의 제본에,
“성지를 받들고 동순(東巡)하여 삼가 왜적 방어에 관한 기무를 진달하는 일입니다. 본부의 제본과 관련된 산동청리사(山東淸吏司)의 안정(案呈)을 받았는데, 본부의 요청으로 호과가 초출하여 본부를 경유, 산동청리사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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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이 긴급한 왜적의 형세에 대해 중국에 주문을 보내다.
조선국왕이 긴급한 왜정에 관한 일로 보낸 주문은 이러하였다.
“의정부의 장계에 ‘지금 왜정이 이미 변하였으므로 화를 장차 헤아릴 수 없다. 배신 황신(黃愼) 등이 알려 온 소식은 이미 연유를 갖추어 자문을 보내어 비보하긴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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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각도의 감사에게 왜적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글을 보낼 것을 청하다.
정원이 비변사의 말에 따라 아뢰기를,
“각도의 감사에게 ‘근일 중외의 인심이 동요하여 안정되지 못하니 효유하여 진정시키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황신(黃愼)의 장계에 의하면, 적추가 중국 사신을 오만하게 대우하였고 청정(淸正)이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