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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종사관 권형과 전판관 임대춘이 중국에서 양곡을 싣고 경강에 도착하다.
주사종사관(舟師從事官) 권형(權⿰忄冋)이 전판관 임대춘(林大春)과 배 105척을 거느리고 천진(天津)의 쌀 7,400여 석과 산동의 좁쌀 17,930여 석, 황두 4,650여 석을 싣고 계속 경강(亰江)에 도착하여 정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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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 권진이 백성의 잡역감역과 군률의 해이함에 관하여 아뢰다.
정언 권진(権縉)이【좌목은 위와 같다.】와서 아뢰기를,
“왜적이 날뛰어 온 지 7년 동안에 병화가 잇달아 난이 평정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황제의 은덕이 널리 미침을 힘입어 우리나라가 재건되었습니다. 외롭게 살아남은 백성들은 모두 유신의 교화를 기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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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 ․ 이산해와 남방 방비책 ․ 마정 ․ 군공 ․ 봉화법 ․ 도적 대책 ․ 관왕묘 건립 등의 문제를 논의하다.
6693. 이항복·이산해와 남방 방비책·마정·군공·봉화법·도적 대책·관왕묘 건립 등의 문제를 논의하다.
좌의정겸도원수(左議政兼都元帥) 이항복(李恒福)과 영의정 이산해(李山海)를 인견하였다.【도승지 유희서(柳煕緒), 가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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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부승지 유간이 가강의 회례, 왜사의 차출, 중국군 주둔 등의 답변내용을 아뢰다.
좌부승지 유간(柳澗)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회답사의 계사에 ‘신들이 사명을 전하고 돌아올 때 가강(家康)이 회례차 왜사를 차출하여 함께 내보내거나 예물을 우리 편에 맡겨 전해 바치게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중국 군사가 나라 안에 가득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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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황윤길 등이 왜 사신 평조신 등과 돌아오다.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왜사 평조신(平調信) 등과 함께 왔다.
당초 윤길 등이 지난 해 4월 바다를 건너 대마도에 도착하였는데, 일본은 당연히 영접사를 파견해서 사신 일행을 인도하여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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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 사람 허의후가 왜국이 명을 칠 것이라는 소식을 절성에 투서하다.
허의후(許儀後)는 복건(福建) 사람이다. 포로가 되어 왜국 살마주(薩摩州)에 끌려 갔다가 수장의 총애를 받고 국중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때 그는 관백이 장차 입구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와 친분이 있는 주균왕(朱均旺)을 은밀히 보내어 절성(浙省)에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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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산동의 군량 10만 석을 배로 운송하여 군량을 보충하게 하다.
황제가 산동(山東)의 군량 10만 석을 내려주어 배로 운송하여 군량을 보충하게 하였다.【이때 바닷길을 통행하지 않은 지 이미 2백 년이나 되었으므로 무관 오정방(吳定邦)을 여순(旅順)의 어구에 보내어 인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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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관 평성통이 와서 명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갑병 5천을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고 말하다.
이때 우리나라가 불행하여 명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일본의 정관 평성통(平成統)이 와서 말하기를,
“명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갑병 5천을 보내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일본이 명나라와는 본래 외교의 의리가 없기 때문에 군대를 출동하지 않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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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이원진이 유구가 일본에 속한 것 등에 대해 치계하다.
중국 상인이 정의현(旌義縣)에 표류해 왔으므로 현감 이탁남(李卓男)이 가서 살펴 보니 28인이 모두 삭발하고 모자를 썼는데 그 옆에 화려한 비단으로 감싼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온곳을 물어 보니, 대답하기를,
“우리는 모두 남경(南京) 소주(蘇州)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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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주 평의진이 동래에 서신을 보내 중국에서 오삼계 등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알리다.
대마도태수 평의진(平義眞)의 서신이 왔다. 그 편지의 겉봉에 큰 글씨로 두 줄을 쓰기를 ‘화융(華戎)의 병사와 인양(隣壤)의 안부를 물으려고 예부대인에게 올립니다.’ 하였다. 그 편지의 대략에 말하기를,
“명나라 옛 신하 오삼계(吳三桂)가 선제(先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