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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형세, 순변사 이일의 교체 문제, 금군과 수문장에 대한 일, 봉공의 일을 논하다.
상이 대신과 비변사 유사당상을 인견하였다.【영의정 유성룡(柳成龍), 영중추부사 최흥원(崔興源), 호조판서 김명원(金命元), 지중추부사 김수(金睟), 병조판서 심충겸(沈忠謙)이 입시하였다.】상이 이르기를,
“황필금(黃弼金)의 초사는 작은 일이 아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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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도지휘사사가 왜정에 관하여 자문을 보내다.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가 왜정에 관하여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본월 4일 흠차순무요동지방찬리군무겸관비왜(欽差巡撫遼東地方贊理軍務兼管備倭) 도찰원우첨도어사(都察院右僉都御史) 이(李)의 전사에 대한 안험을 접수하였는 바,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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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부원군 윤근수가 왜군의 철병 동향에 대해 치계하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였다.
“황신(黃愼)이 16일에 신에게 통지하기를 ‘평조신(平調信)의 아들이 어제 비로소 도착하여 말하기를 「행장(行長)이 이달 4일에 일본을 떠나 12일에 낭고야(浪古耶)에 이르렀으며 관백은 이미 철병을 허락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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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언백이 요시라가 행장이 곧 부산에 도착하니 배신을 정하기를 청한다고 치계하다.
경상우병사 고언백(高彦伯)이 치계하였다.
“요시라(要時羅)가 사람을 시켜 통언하기를 ‘행장(行長)이 관백(關白)을 보고 천사가 오랫동안 부산(釜山)에 머물고 있는 의도와 조선 또한 장차 통신할 것이라는 사유를 극구 진술하니, 관백이 크게 기뻐하면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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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에서 심유경이 관백의 차사에게 구타당했다는 말을 듣고 정사가 왜영을 탈출하였다고 보고하다.
접대도감(接待都監)이 아뢰기를,
“유조신(劉朝臣)의 가인이 남몰래 저에게 말하기를 ‘심유격(沈遊擊)이 낭고야(浪古耶)에 도착하자, 관백의 차사가 결박하고 힐책하기를 「혼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조선 지방도 허락하지 않는데 봉사만 이루려 함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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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의 경호 문제, 중국군의 남방 방어 문제, 서울의 내성 수축 문제를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대신 및 비변사 유사당상인 영돈녕부사 이산해(李山海),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행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 좌의정 김응남(金應南), 행지중추부사 정탁(鄭琢), 행형조판서 김명원(金命元), 병조참판 노직(盧稷)을 인견하였는데, 우부승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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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좌병사 김응서가 치계하다.
6389. 경상 좌병사 김응서가 치계하다.
경상좌병사 김응서(金應瑞)가 치계하였다.
“흥양(興陽) 출신 김경립(金慶立) 등 10명이 왜적들 속에서 작은 배를 훔쳐 타고 장기(長鬐) 지경에 들어와 정박하였습니다. 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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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일본에 밀정 파견을 하지 말 것을 건의하다.
비변사가 비밀히 아뢰기를,
“2~3월 두 달에는 으레 순풍으로 도망쳐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 것인데도 춘신이 지나도록 전혀 나타나지 않고, 더욱이 변방의 민심은 함부로 서로 선동하여 매우 흉흉한데도 바다 밖의 소식을 알아볼 길이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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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에 대해 이헌국 ․ 최흥원 ․ 김명원 등이 의논한 바를 아뢰다.
왜적이 강화를 청한 문제로 대신 및 2품 이상의 관원이 의논드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헌국(李憲國)은 의논드리기를,
“난리 뒤에 강화를 청한 것은 일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및 평조신(平調信) 등이 수백년 이래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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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 황윤길 등이 왜 사신 평조신 등과 돌아오다.
통신사 황윤길(黃允吉) 등이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왜사 평조신(平調信) 등과 함께 왔다.
당초 윤길 등이 지난 해 4월 바다를 건너 대마도에 도착하였는데, 일본은 당연히 영접사를 파견해서 사신 일행을 인도하여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김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