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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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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의주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송경략의 인품, 문답 내용 등을 듣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의주에서 돌아왔는데 상이 인견하고서 송경략(宋經略)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으니, 아뢰기를,
“그의 형모를 보니 그다지 장대하지는 않으나 다분히 영기는 있었습니다.”
하였다. 이어 계사를 써 올리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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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이 의주에서 돌아와 송경략이 왜적이 조공하는 대가로 강화하기로 했다고 아뢰다.
좌승지 홍진(洪進)이 의주(義州)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신이 송경략(宋經略)에게 나아가 문안하고 ‘국왕이 노야(老爺)께서 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좌승지 홍진과 내의(內醫) 남응명(南應命)을 보내어 문안하게 하고 아울러 약물과 음식을 보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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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송시랑과는 변론하지 말라고 이르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오늘날의 사세는 오로지 중국군의 진퇴에 따라 우리나라의 존망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적을 토벌하여 원수를 갚는 것을 잊을 수는 없으나 형편상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송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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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등을 인견하고 제독과 경략의 불협, 청병 등을 논의하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안주로부터 오니, 상이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찌하여 왔는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곡절은 서장에 진술하였거니와 경략이 시켜서 왔습니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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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사의 군량을 위해 둔전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비망기를 내리다.
대신에게 비망기를 내려 일렀다.
“생각건대 오늘날의 국세는, 적병이 다시 창궐하지는 않으나 인민이 절로 소진되어 나라를 지킬 힘이 없는 것 같다. 백성은 기근과 병란 때문에 죽고 양식은 군량과 접대로 인해 고갈되었는데 적병이 국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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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군사를 보내겠다는 허락을 반드시 받아오도록 사신에게 다짐하다.
전교하였다.
“김수(金睟)에게 범연히 하서해서는 안 된다. 부경한 뒤에 해야 될 일을 상세히 기록하여 하서함으로써 기어이 중국의 허락을 얻어내어 발병한다는 기별을 가지고서야 나오게 하라. 그리고 중국 관원들이 있는 곳을 왕래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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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사의 사행 때 송응창 등에게도 자문을 보내는 일에 대해 비변사에게 의논하도록 하다.
전교하였다.
“이번에 가는 사은사의 사행은 요동순안(遼東巡按) 주유한(周維翰)과 광녕순안(廣寧巡按) 한취선(韓取善)에게 다급함을 고하고 적정을 상세히 진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송응창(宋應昌)·이여송(李如松)이 다행히 영평(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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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행과 관련한 내용을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사신을 응대할 내용을【비변사에서 국가에 관계되는 긴급한 일에 대해 의논, 이를 기록하여 김수(金睟)의 사행에 줌으로써 응대에 대비하게 하였다.】이와 같이 상세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단 군사를 초집할 수 있다고 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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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김수가 석상서의 차관인 주성공이 경략과 제독을 비난하였다고 아뢰다.
장도사(張都司)의 접반사인 김수(金睟)가 서장을 올렸다.
“수일 전에 석상서(石尙書)의 차관인 주성공(周成功)이 적세를 탐청하기 위한 일로 대구(大丘)로 가려 하면서 두 장군이【송경략(宋經略)과 이제독(李提督)을 가리킴】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그르치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