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근수 등이 심유격을 만나고 군사를 더 보내 줄 것을 청하다.
윤근수(尹根壽)와 한응인(韓應寅)이 아뢰기를,
“신들이 중로에 심유격(沈遊擊)을 가서 만났더니, 그가 ‘내가 하루만 머물렀다 요동에 가서 순안(巡按)들과 의논하여 대군을 발정케 하겠다.’ 고 하기에, 신이 5,000명의 군사를 발정하여 주길 청하였습니다…
-
종사관 유희서를 인견하고 심유경이 강화를 청하는 일, 평양 공격 등을 논의하다.
도원수의 종사관 유희서(柳熙緖)가 비밀히 계달하는 일로 오니 즉시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상이 유희서에게 이르기를,
“원수가 무슨 일 때문에 그대를 보냈는가?”
하니, 유희서가 대답하기를,
…
-
윤근수가 심유격을 만나 왜적과 만난 일을 물러본 뒤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아뢰었다.
“심유격(沈遊擊)이 방금 용만관(龍灣館)에 도착했기에 신이 유격을 면대하고 말하기를 ‘노야께서 광녕(廣寧)에 있을 때 나에게 말하기를 「왜적들이 두 왕자를 돌려보내고, 포로로 된 그대 나라의 남녀를 모두 그대 나라에…
-
진주사 정곤수 등이 북경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중국 조정의 상황 인식을 논의하다.
진주사 지중추부사 정곤수(鄭崐壽), 서장관 직강(直講) 심우승(沈友勝)이 북경에서 돌아오니, 상이 편전에서 인견하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주한 일은 소원대로 되었는가?”
하니, 정곤수가…
-
이호민이 심유경의 강화책에 대해 이여송이 화를 낸 일 등을 보고하다.
집의 이호민(李好閔)이 아뢰었다.
“신이 19일에 제독을 보았던 곡절은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20일 새벽에 신이 군마와 양초(粮草)의 수효를 적어 가지고 갔더니, 이여백(李如栢)이 표정로(表廷老)를 불러서 사적으로 말하기를 ‘심유경이 많은 은냥(銀兩)과…
-
중국군의 동향과 출병 시기 등에 대해 이산보가 올린 보고문.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가 치계하였다.
“신이 8일 배사한 후에 중강(中江)을 건넜는데 중국 군졸이 관문을 닫고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마음대로 지나가지 못한다. 이는 바로 금약이다. 동참장(佟參將)이 송시랑(宋侍郞)을 영접하는 일로 떠…
-
한응인 등을 인견하고 양추의 조달, 평양의 적병 숫자 등을 의논하다.
제독접반사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과 판윤 이덕형(李德馨)을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한응인이 아뢰기를,
“우리나라가 중국 군사를 고대하였는데 중국 군사가 이미 도착하였습니다. 지금 일국의 존망이 중국 군사에게 달려 있는데 만…
-
영의정 최흥원 등을 인견하고 군량의 주선, 함경도 왜적의 토벌 등을 논의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 겸호조판서 홍성민(洪聖民), 청천군 한준(韓準), 대사헌 정창연(鄭昌衍), 아천군 이증(李增),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행이조참판 구사맹(具思孟), 행호조참판 윤자신(尹自新), 형조참판 이희득(李希得), …
-
윤근수가 송경략을 만나 중국군의 경성 진공 일정에 대해 논의한 일을 아뢰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치계 하였다.
“신이 삼가 성지를 받았습니다. 이 달 9일 초저녁에 양부장(楊副將)이 의주로 들어오지 않고 곧바로 강을 건너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은 그들보다 뒤질까 싶어 그날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말을 달려 10일 저녁…
-
이제독이 평양싸움에서 조선사람을 베어 수급을 바쳤다는 일을 해명하다.
중국의 이과급사(吏科給事) 양정란(楊廷蘭)이 상소하여 이제독(李提督)이 평양의 싸움에서 조선 사람을 잡아다 베어 수급을 바친 일을 논하자, 이제독이 글을 올려 스스로 해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조선에 주둔하며 군사와 말을 휴양하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