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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학 심충겸이 동궁에서 평안도 왜적의 동향 등에 대해 차자를 올리다.
부제학 심충겸(沈忠謙)이 동궁에 있으면서 차자를 올리기를,
“천광(天光)을 우러르지 못한 지가 이미 오래이어서 견마지정(犬馬之情)에 구구히 그리워지는 정회를 견딜 길이 없습니다. 신의 환조(還朝)를 허락할 수 없으시다면 신의 직명을 교체하여 조정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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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국군에 소요될 군량을 계산하여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중국군은 모두 합쳐 48,585명인데 장령(將領)·중군(中軍)·천파총(千把摠)은 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1일 양식이 1명당 1승 5홉입니다. 말은 26,700필인데 장령 등의 말은 이 숫자에 포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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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제 이홍로가 전란에 즈음한 급선무로 군량 ․ 정령 등을 지적하여 상소하다.
급제(及第) 이홍로(李弘老)가 소를 올리기를,
“신은 참으로 죽을 곳을 알지 못하여 반년을 왜구와 한 하늘을 이고 살았습니다. 한(漢)의 대업은 한 귀퉁이에서만 편안해야 했고 정(鄭)나라의 군사는 스스로 지쳤습니다. 밤에 닭울음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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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요동에서 송응창 등에게 구원병을 청하며 올린 글.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요동으로부터 돌아왔다. 윤근수가 요동에 이르러 경략 송응창(宋應昌), 광녕총병관 양소훈(粱紹勳), 순무어사【그 이름은 잊었다.】에게 글을 올렸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양구(陽九)의 운수를 만나 혹심한 병화를 입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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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만관에서 심유경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출병시기를 논의하다.
상이 유격장군 심유경(沈惟敬)을 접견하기 위해 용만관(龍灣館)에 나아갔다. 막차에 들어가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행 도승지 유근(柳根)을 인견하였다. 윤두수가 아뢰기를,
“유격이 겉으로 적과 강화를 하여 우리의 두 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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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만관에서 요동도사 장삼외를 접견하다.
상이 용만관(龍灣館)에 행행하여 요동도사 장삼외(張三畏)를 접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상께서 이미 칙명을 내려 10만 군사를 보내기로 허락하여 우리나라가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군사가 출발할 기일이 정확히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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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의 동향과 출병 시기 등에 대해 이산보가 올린 보고문.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가 치계하였다.
“신이 8일 배사한 후에 중강(中江)을 건넜는데 중국 군졸이 관문을 닫고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마음대로 지나가지 못한다. 이는 바로 금약이다. 동참장(佟參將)이 송시랑(宋侍郞)을 영접하는 일로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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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민영경이 이제독을 만나 출병 일정과 양향 상황을 논의한 뒤 보고하다.
동지 민여경(閔汝慶)이 아뢰었다.
“신이 23일 아침에 우연히 제독을 봉황성 앞길에서 만났습니다. 신이 통사 진효남(秦孝男)을 시켜 꿇어앉아 자문을 바치게 하고, 신이 고하기를 ‘심야(沈爺)가 기한이 지나도록 보고가 없어 왜적들이 스스로 의아해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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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각영의 영병 수목을 기록하다.
중국군 각영 영병의 수목은 다음과 같다.
흠차제독계요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군무총병관중군도독부도독동지(欽差提督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軍務摠兵官中軍都督府都督同知)이여송(李如松)의 표하중군원임참장도지휘첨사(標下中軍原任參將都指揮僉事) 방시춘(方時春)이 통령하는 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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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재를 통하여 무장을 뽑는 일, 사망한 중국군을 치제하는 일 등을 전교하다.
상이 정원에 전교하였다.
“본도 병사에 이일(李鎰)을 임시 병사로 차임하였다 하는데 어찌 임시로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무장을 얻기 어려우니 내 생각에는 병조참판 신잡(申磼)을 제수할 만하다고 여긴다. 이 사람을 시켜 진수하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