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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왜적을 소탕하기 위해 중국 병부에 자문을 보내다.
병부에 이자하였다.
“이 달 4일에, 함경도관찰사 윤탁연(尹卓然)과 평안도좌방어사 이일(李鎰) 등이 덕원부사(德源府使) 김신원(金信元) 등이 비보한 것을 갖추어 치계한 바에 의하면 ‘영흥(永興) 이남의 각처에 머물던 왜적이 각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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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왕자 등을 풀어주면 용서하겠다는 격문을 이제독이 보내도록 청하자고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두 왕자가 오랫동안 포로로 잡혀있고 왜적의 성질이 지독하니 불측한 걱정은 숨돌릴 틈이 없어,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간담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중국군의 포수는 설한령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려고 하는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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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전라순찰사 권율, 도원수 김명원 및 운량사 권징의 추고를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순찰사 권율(權慄)은 외람되이 중임을 맡고서 조처가 시의를 잃어 전후의 전쟁에서 많은 군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군이 이르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곧바로 스스로 도강하여 무악(毋岳)에서 총포를 쏨으로써 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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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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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이제독이 동파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26일 제독이 개성부를 경유, 임진의 얕은 나루를 건너 파주(坡州)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27일 제독은 이도독(李都督)과 같이 가정 100여 명을 거느리고 벽제(碧蹄)를 향해 달려갔는데 이는 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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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이 적에 쫓겨 파주에 주둔하다.
중국군이 적에 쫓기자 제독이 뒤를 막으며 후퇴했는데 대군이 점차로 후퇴하여 파주(坡州)에 주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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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이 동파로 물러나 머무르다.
중국군의 사상자는 수십 명이고 제독의 가정 중 아주 신임하는 자 1명도 죽었는데 제독이 말 위에서 통곡하였습니다.
28일 이른 아침에 동파(東坡)로 물러나 주둔하려 하므로 신이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접대사 이덕형(李德馨),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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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순찰사 홍세공이 왜적이 두 왕자를 데리고 함흥부로 향했다고 치계하다.
함경도순찰사 홍세공(洪世恭)이 치계하였다.
“포로가 된 영부사 김귀영(金貴榮)의 첩자 김천(金闡)과 임해군 이진(李珒)의 종인 돌모치(乭毛赤) 등이 이달 26일 도망해 진영에 도착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을 자세히 물어보니 ‘적은 중국군이 평양을 소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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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가 북벌할 것을 청하니,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다.
6557. 이정구가 북벌할 것을 청하니,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다.
동지중추부사 이정구(李廷亀)가 비밀히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부재한 사람으로 비변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삼가 근일 조정이 장차 북쪽 변방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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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과 중국군의 주둔을 요청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와 일본과의 강화 문제 등을 논의하다.
상이 시어소(時御所)의 별전에 나아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완성부원군 이헌국(李憲国), 경림군 김명원(金命元), 지사(知事) 신점(申點), 예조판서 심희수(沈喜寿), 병조판서 홍여순(洪汝諄), 호조판서 신잡(申磼), 이조판서 임국로(任国老), 행호군(行護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