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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중추부사 윤두수 등이 대가의 파천 계책에 대해 아뢰다.
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좌의정 김응남(金應南)·지중추부사정탁(鄭琢)·우의정 이원익(李元翼) 등이 청대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오시 초에 별전에 나아가 네 대신을 인견하였는데, 승지 허성(許筬)이 입시하였다. 김응남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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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을 지키는 방책을 의논하여 시행하라고 전교하다.
비망기로 정원에 전교하였다.
“상시의 기무(機務)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근일에는 도성을 지키는 일로 소장과 차자가 사방에서 몰려와 기무 밖에 따로 한 공사를 내니, 수응(酬應)을 감당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도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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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사 노직이 군사와 양식때문에 중국에 다녀온 일을 복명하다.
주문사(奏聞使) 노직(盧稷)이 복명한 후에 아뢰기를,
“군사와 양식에 관한 일은 이미 두 번의 선래 편에 모두 치계하였습니다. 대개 손광(孫鑛)과 이정(李楨)의 뜻을 보건대, 압록강의 형세가 튼튼하지 않아서 왕경과 기성(箕城)에서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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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중국 요동 병졸의 작폐를 염려하다.
비망기로 일렀다.
“요동 병졸 3천명이 먼저 나온다고 하니 그들의 작폐가 염려된다. 그 병졸을 거느린 중국 장수를 접대하는 관원은 품계가 낮은 관원으로 차송해서는 안 되니, 적임자를 선발하여 보내 잘 접대하고 중국 장수에게 군령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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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왜적을 방어하는 여러 방도를 정원에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1. 한강을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강을 지키지 않았다가 적이 성아래까지 이르러 적에게 포위 당한 뒤에야 도성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 계책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은 창졸간에 당했던 임진년과는 다르다.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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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남별궁에 거둥하여 섭유격을 접견하다.
상이 남별궁에 거둥하여 섭유격(葉遊擊)을【상(鱨)】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우리나라의 일을 위하여 먼 길에 추위를 무릅쓰고 다시 와 주시니 황은이 망극한 나머지 대인에게 감사하오.”
하니, 섭유격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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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 자문의 육문도에 관한 일로 비변사에 이르다.
비망기로 일렀다.
“어제 병부의 자문을 보니, 육문도(陸文韜)에 관한 일은 실로 놀라운 일인데 자문에 혹 우리나라에서 지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지금 마땅히 전일에 육문도가 가지고 온 간찰은 우리나라에서 답한 글과 아무런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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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공민왕 23년에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 이희(李禧)가 수전(水戰) 훈련에 관해 왕에게 글을 올렸다. 왕이 개탄해 말하기를
“이희는 조정 밖에 있는 신하인데도 이렇게 건의하고 있다. 그런데 조정의 관료들과 나를 시위하는 군인들 중에는 일찍이 한 사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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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위
…… 신우(辛禑) 때에 김해부사가 되어 왜군을 황산강(黃山江)에서 공격하여 29명을 베었는데 그 밖에 강에 투신하여 죽은 자도 많았었다. 또 왜적은 선박 50척을 가지고 김해군 남포(南浦)에 가서 패쪽을 세워 나중 오는 적들에게 보이기를,
“우리들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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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란
…… 다시 태조를 따라 함주 토아동(兎兒洞)에 가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공로로 선력좌명공신(宣力佐命功臣) 칭호를 받고 밀직부사로 임명되었다. 요동을 칠 때에는 태조를 따라 갔다가 회군해 오자 이내 상의동지밀직사사회의도감사(商議同知密直司事會議都監事)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