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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로 ․ 안세희를 인견하고 동래 전투, 각도의 민심과 적의 동향 등을 논의하다.
상이 김경로(金敬老)·안세희(安世熙)를 인견하였는데, 승지 신점(申點), 가주서 강욱(康昱), 봉교 기자헌(奇自獻)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대들이 들은 바를 모두 진술하라.”
하니, 경로가 아뢰기를,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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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양덕의 적에 대한 방어, 군량 조달, 중국군의 전력 등을 논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대사헌 이덕형(李德馨), 형조판서 신잡(申磼)을 인견하였는데, 도승지 유근(柳根), 봉교 기자헌(奇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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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병관 양소훈이 곧 출정하겠다는 자문에 대해 명군의 구원을 청하는 회자.
요동총병관 양소훈(楊紹勳)이 우리나라에 자문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에,
“본국이 본디 충순을 바치다가 이 왜노의 잔학을 입었으니, 우리가 길러주는 인자함을 진실로 그만두지 못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천자의 명으로 특별히 군사를 파견하였다가 완전한 승리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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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제 이홍로가 전란에 즈음한 급선무로 군량 ․ 정령 등을 지적하여 상소하다.
급제(及第) 이홍로(李弘老)가 소를 올리기를,
“신은 참으로 죽을 곳을 알지 못하여 반년을 왜구와 한 하늘을 이고 살았습니다. 한(漢)의 대업은 한 귀퉁이에서만 편안해야 했고 정(鄭)나라의 군사는 스스로 지쳤습니다. 밤에 닭울음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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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선위하겠다는 뜻을 거두라고 청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국가의 오늘날 화란은 참으로 세상이 생긴 이후로 없던 일입니다. 대소의 신민이 눈을 부릅뜨고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잠시라도 죽음을 늦추고 이 환란을 극복할 그날을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성상의 신모예산(神謀睿算)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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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중국군의 출동이 늦어지자 왜적에 대응할 방책을 논하며 차자를 올리다.
사헌부집의 이호민(李好閔), 장령 이시언(李時彦), 지평 유몽인(柳夢寅)이 차자를 올리기를,
“군사가 지치면 반드시 패하고 적이 오래 머물면 반드시 익숙하게 되는 법입니다. 오늘날 적을 섬멸하는 일은 일각이 급한데도 앉아서 천장(天將)과의 약속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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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요동에서 송응창 등에게 구원병을 청하며 올린 글.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가 요동으로부터 돌아왔다. 윤근수가 요동에 이르러 경략 송응창(宋應昌), 광녕총병관 양소훈(粱紹勳), 순무어사【그 이름은 잊었다.】에게 글을 올렸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양구(陽九)의 운수를 만나 혹심한 병화를 입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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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화의론에 대한 대책의 강구와 중국 관원 접대에 만전을 기할 것을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대적을 섬멸하지 못하였고 중국 군사도 이르지 않았는데 심유격(沈遊擊)이 단기(單騎)로 호랑이의 소굴에 들어갔으니 간사함이 많은 적들인지라 의외의 환난이 반드시 없으리라고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대비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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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원이 근왕하기 위해 온 의병들을 흩어지게 한 병조당상의 추고 등을 청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본진의 정병은 모두 싸움터로 나가서 숙위가 단약할 뿐만이 아니라 수졸도 태반이나 모자라니 참으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무릇 근왕하기 위해 달려온 자는 의리상 거절할 수가 없는데 얼만 전에 호조에서는 단지 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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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중국군이 출발하는 즈음에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는 일을 아뢰다.
예조가 아뢰었다.
“대병이 이미 26일에 출발하였다 하므로 우리나라에 도착할 날짜를 헤아려 명산대천(名山大川)에 제사를 지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국내의 사전(祀典)에 기록된 악독(嶽瀆)에는 그 주에다 단(壇)을 쌓고 위(位)를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