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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서 3통을 치보하고 투항하는 왜적은 형세를 살펴 처리하게 하다.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치계하기를,
“지금 5월 4일에 울산군수(蔚山郡守)가 치보한 내용에 ‘수로의 염포후망군관(鹽浦候望軍官) 박암손(朴岩孫)이 왜서 3통을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오늘 사시에 왜군 중에서 배 한 척이 서생포(西生浦)로부터 염포 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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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춘이 왜장 희팔과 문답한 별록을 보고하다.
장희춘(蔣希春)이 적과 문답한 별록은 이러하다.
“이달 15일 서생포(西生浦) 왜영에 도착하니, 왜장 희팔(喜八)이 그의 집으로 영입하였습니다. 좌정한 후 희팔이 묻기를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을 포살하고, 산에 들어가 나무하는 자를 생포한 것도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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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각지역의 근황과 왜적의 정세에 대해 마도독에게 자문을 보내다.
흠차비왜총병관후군도독부도독동지 마(麻)에게 회자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경성에서 부산 · 서생포에 이르는 길이 매우 많습니다. 한 길은 충청도 공주를 경유하여 전라도 전주 · 남원을 거쳐 경상도 의령과 진주로 가서 부산에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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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수군으로 왜적을 견제하면서 정세를 살펴 계책을 정할 것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심유격(沈遊擊)의 게첩이 이러하니 반드시 허물을 우리에게 돌려 스스로 변명하려는 계책을 내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으므로, 정말 염려됩니다. 적의 정세에 대해서는 비록 요령부득이긴 하지만, 중국 군사가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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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라가 전라 ․ 충청 ․ 경상 ․ 제주를 침략할 계획과 목적 등을 알리다.
경상우병사 김응서(金應瑞)가 치계하기를,
“이달 6일에 요시라(要時羅)가 의령(宜寧)으로 나와 신을 만나자고 하기에, 신이 7일에 산성에서 내려가 그가 온 까닭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하였습니다. ‘평조신(平調信)이 2일 부산에 도착하였는데 그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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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차부도어사가 조선측에 자문을 보내오다.
흠차부도어사(欽差副都御史) 형(邢)이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명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경리하는 편부에 관한 일입니다. 병부의 자문을 받아 보건대, 이것은 해본부(該本部)가 제본한 것으로 직방청리사(職方淸吏司)의 안정(案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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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병사 이시언이 사로잡은 왜적 복전감개의 공초내용.
충청병사 이시언(李時言)이 사로잡은 왜적 복전감개(福田勘介)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아비는 전 국왕의 장수였는데 관백(關白)이 찬탈할 때 피살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를 혐오하여 쫓아내서 가등청정(加藤淸正)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군사 1백여 명을 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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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상서 형개가 천자의 뜻을 받들어 보낸 자문과 그에 대한 회답.
병부상서 형개(邢玠)가 명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경리(經理)하는 일의 편부에 대한 자문에,
“조선국왕이 아뢴 내용에 ‘삼가 생각건대 황제께서는 천지 부모와 같아서 우리나라가 왜적에게 몰락함을 걱정하여 대군을 두 차례나 보냈고 또한 신이 허약하여 스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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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김응려의 공초 내용을 보고받다.
최천건(崔天健)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청파(靑坡)에 사는 고(故) 정랑 강경희(康景禧)의 처조카 김응려(金應礪)가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돌아왔다 하므로 본사가 그를 불러서 왜적의 사정을 물어보았는데 그 공초를 서계합니다. 그가 공초하기를 ‘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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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총병부에 적군의 동태와 대비책, 우리 장수의 전과를 알리게 하다.
제독총병부(堤督摠兵府)에 이자하였다.
“조선국왕은 왜적의 정세가 긴급한 일로 자문을 보냅니다. 본년 10월 28일에 접수한흠차제독남북수륙관병어왜총병관후군제독부도독동지 마(麻)의 자문에 ‘흠차총독경략군무병부상서 형(邢)의 헌패(憲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