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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의 졸기.
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李枝)가 졸하였는데, 이지는 우리 태조의 종제이다. 이지는 나이 8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숙부인 익양군(益陽君) 왕기(王琦)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태조께서 잠저로 불러와서 두고 무양하기를 심히 두터이 하여 상시 휘하에 있게 하였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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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에 있던 조헌이 일본의 서계에 분개하여 침략에 대비할 것을 아뢴 소장과 첩황 ①.
전 교수 조헌(趙憲)이 소장을 올렸으나 답이 없었다. 조헌이 일본의 서계가 패역스럽고 왜사도 함께 나왔다는 말을 듣고서 옥천(沃川)에서 백의로 걸어와서 예궐하여 소장을 올렸는데 그 내용에,
“신은 생각건대, 선비는 자신의 말의 쓰여지지 않으면 말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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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적에 선왕을 무함한 내용이 적혀 있자, 중국 황제에게 주본을 바치다.
주본에 이르기를,
“조선국왕 신 성휘(姓諱)는 원통한 무함을 통렬히 분별하여 밝게 씻어주기를 바라는 일로 삼가 아룁니다.
지난 만력(萬曆) 42년 10월 10일 주청사로 간 배신 박홍구(朴弘耈) 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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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 등이 왕 책봉을 제기하는 표문을 원나라 황제에게 전달하다.
왕후(王煦) 등이 이제현(李齊賢)을 원나라에 보내 상표하기를,
“…… 충렬왕은 세조 황제의 딸 홀독겁렬미실(忽禿㤼烈迷實) 공주와 결혼하여 익지례불화(益智禮不花) 충선왕을 낳고 충선왕은 아라눌특실리(阿刺訥成失里) 충숙왕을 낳았으며 충숙왕은 보탑실리(普塔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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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 ․ 왕후 등이 보탑실리왕의 동복동생과 보탑실리의 서자 중 선택하여 달라고 표문을 올리다.
정승·왕후 등이 이제현(李齊賢)을 원나라에 보내어 표문을 올리기를,
“국왕이 근일에 병을 얻어 훙하시어 온 나라가 애통하고 있습니다. 왕은 나이 어리고 후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복속되지 않는 일본을 이웃하고 있어 하루라도 왕위를 비울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