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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요동의 자문에 대한 일, 성문을 지키며 척간하게 하는 일, 군량에 관한 일, 이요를 청대한 일 등을 아뢰다.
상이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요동의 자문은 어떠하던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요즘에 유정(劉綎)의 병력이 철수하려 하고 군기도 점차 수송해가려고 하므로 매우 실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 이 자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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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감주부 조목이 항왜 문제에 대해 상소하다.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조목(趙穆)이【이황(李滉)의 문인이다. 경술이 있어 유일로 등용되어 일찍이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지냈었다.】상소하기를,
“신은 이제 나이가 일흔 하나로 이미 관직에 나갈 때는 아닙니다. 다만 국가가 우리나라 역사이래 천고에 없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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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 유숙이 민심을 보존할 것, 원한을 풀 것, 수령을 가릴 것 등에 관해 상소하다.
생원 유숙(柳潚)이 상소하였다.
“생원 유숙은 주상 전하에게 상언합니다. 신은 태학생으로서 2백 년 동안 국가에서 길러 온 교화에 훈도되었는데, 주상께서 욕을 보고 계시는데도 목숨을 바치지않고 적과 함께 한 하늘 아래 살고 있으면서 밖으로는 흉적을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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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찬관 이덕열 등과 죽은 백성들에 대한 제사 ․ 군중의 문란 등에 대해 논의하다.
정오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을 강하였다. 참찬관 이덕열(李德悅)이 나아가 아뢰기를,
“계사년에 성중이 분탕될 때 죽음을 당한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자는 것은 매우 좋은 생각입니다. 지방에도 통지해야 할 것인데, 진주에서 장사들이 싸우다 죽었고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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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유덕종의 일에 대하여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유덕종(柳德種)의 일이 과연 그와 같다면 정상이 매우 해괴합니다. 다만, 성안에 들어온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고, 그가 김천일(金千鎰)과 내응을 약속한 곡절도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스스로 저지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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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제 황혁을 공초하다.
급제 황혁(黃赫)이 공초하였다.
“임진년 변란 초에 왕자가 도성을 나가자 연로의 수령들은 먼저 왕자를 피하는 데 급급하였으므로 모든 읍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단지 철원부사 김협(金⿰車夾) · 회양부사 김연광(金鍊光)·통천군수 정구(鄭逑) 등만이 왕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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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죄인 황정욱을 추국한 공초 내용을 보고하다.
죄인 황정욱(黃廷彧)을 서울로 잡아와서 삼성이 추국하였다. 정욱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전지 안의 ‘무릎을 꿇었다.’ 는 일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로잡혔던 재신·조사·유생들은 매우 많았는데도 왜적들이 모두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치욕을 주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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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 ․ 이산해와 남방 방비책 ․ 마정 ․ 군공 ․ 봉화법 ․ 도적 대책 ․ 관왕묘 건립 등의 문제를 논의하다.
6693. 이항복·이산해와 남방 방비책·마정·군공·봉화법·도적 대책·관왕묘 건립 등의 문제를 논의하다.
좌의정겸도원수(左議政兼都元帥) 이항복(李恒福)과 영의정 이산해(李山海)를 인견하였다.【도승지 유희서(柳煕緒), 가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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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등의 사우 건립을 허락하다.
고경명(高敬命) 등의 사우 건립을 허락하였다. 처음에는 호남사람 이지효(李之孝) 등이 상소하기를 ‘고경명과 김천일(金千鎰)은 공이 똑같은데도 포증하는 은전이 김천일에게는 내리지 않았으니, 증직해 주었으면 합니다.’ 하고, 또 사재를 모아 묘우를 세워 숭경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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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의 사당에 편액을 하사하고 제사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다.
전 감찰 박지효(朴之孝)가 상소하여, 고경명(高敬命)의 사우에 편액을 하사하고 본주로 하여금 봄·가을로 치제하게 하기를 청하니, 상이 예조로 하여금 의논하도록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호남 선비들이 고경명을 위해 사당을 세우고 나서 편액을 하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