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부상서 형개가 천자의 뜻을 받들어 보낸 자문과 그에 대한 회답.
병부상서 형개(邢玠)가 명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경리(經理)하는 일의 편부에 대한 자문에,
“조선국왕이 아뢴 내용에 ‘삼가 생각건대 황제께서는 천지 부모와 같아서 우리나라가 왜적에게 몰락함을 걱정하여 대군을 두 차례나 보냈고 또한 신이 허약하여 스스로 …
-
경리 만세덕을 통해 세자 책봉을 빨리 내려줄 것을 청하다.
6579. 경리 만세덕을 통해 세자 책봉을 빨리 내려줄 것을 청하다.
경리 만세덕(萬世徳)에게 이자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은 소국이 소원하는 것을 조정에 전주하여 세자를 책봉함으로써 국본을 정해…
-
이헌국 등이 경리 만세덕에게 세자 책봉을 위해 중국 조정에 아뢰어 줄 것을 청하다.
6580. 이헌국 등이 경리 만세덕에게 세자 책봉을 위해 중국 조정에 아뢰어 줄 것을 청하다.
의정부 우의정 이헌국(李憲国) 등이 경리 만세덕(萬世徳)에게 정문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방의 정원을 갖추…
-
영의정 이항복이 원훈 문제에 있어서 이덕형 ․ 심충겸 ․ 홍진 ․ 이괵 등의 일을 아뢰다.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 비밀리에 아뢰기를,
“…… 신이 전후 내린 비망기를 읽어보건대 ‘공이 있는 자는 모두 기록하고 중국군을 청하여 오게 한 자는 마땅히 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중국군들이 우리나라에 오게 된 것은 의주(義州)에 갔었…
-
이덕형을 청원사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다.
상이 숙천(肅川)에 머물면서 이덕형(李德馨)을 청원사(請援使)로 삼아 요동에 가서 급박함을 알리도록 하였다. 당시 이항복(李恒福)과 이덕형이 야대하여 상에서 영변에 진주하기를 청하고, 그들이 직접 요동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겠다고 하면서 서로들 다투며 가기를 자…
-
요진에서 총병 조승훈 등을 파견하여 평양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다.
요진(遼鎭)에서 총병 조승훈(祖承訓), 참장 곽몽징(郭夢徵), 유격 사유(史儒)·왕수신(王守臣)·대조변(戴朝弁) 등을 파견하여 평양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한 채 사유는 전사하고 승훈은 퇴각하여 가산(嘉山)에 주둔하였다. 요진에서 먼저 승훈 등을 보내어 …
-
세자가 숙천에서 용강으로 옮겨 머물다.
세자가 숙천(肅川)에서 용강(龍岡)으로 옮겨 머물렀다.
-
왜적의 동향, 혜성의 변고, 풍수, 환도, 명군의 유병 문제를 의논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영중추부사 심수경(沈守慶),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병조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장운익(張雲翼), 주서 남이신(南以信), 봉교 조수익(趙守翼), 검열 김용(金涌)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
비변사가 유정과 오유충 진영에 의복을 보낼 대책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한효순(韓孝純)의 장계를 보건대 ‘유정(劉綎)의 군사들이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도 몸에 걸칠 두터운 옷이 없기 때문에 날마다 더욱 돌아가기만을 생각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중국 군사들…
-
예조판서 정창연이 순안어사에게 왜적의 상황을 보고하다.
예조판서 정창연(鄭昌衍)이【8월 26일 정주(定州)에 있었다.】치계하였다.
“제독과 순안어사(巡按御史)가 이 달 24일에 평양(平壤)을 출발하여 숙천(肅川)에 와서 유숙하고 25일에 안주(安州)로 갔다가 오늘 정주(定州)에 도착했는데 경략은 어제 이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