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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략에게 왜노에게 침탈당한 도와 침범당하지 않는 도에 대해 회자하다.
경략이 이자하였는데 대략에,
“본국의 팔도 중에 어느 도 어느 읍은 모두 왜노가 점거하였고, 어느 도는 침범 당하였으며, 어느 도는 아직 침범 받지 않았고, 어느 곳 어느 도는 전혀 지경에 들어오지 않았는가 하는 사실을 세세히 갖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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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성룡이 시무 대책을 건의하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비변사 낭청을 시켜 아뢰기를,
“근자에 중외의 인심을 보니, 날로 더욱 해이해지고 기율이 없어져 언뜻 적의 기별만 들어도 도망치는 것으로 상책을 삼습니다. 장수로부터 수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런 생각을 먼저 품기 때문에 군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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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남쪽 지역의 경계에 대해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유성룡(柳成龍)의 계사를 보니, 각 조목의 논한 바가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 마땅히 거행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다만 충청도 감사가 한두 달씩 충주(忠州)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본주는 극히 패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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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과 강화에 요새를 설치하고 청주와 충주 사이를 경략토록 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수원의 독성산성(禿城山城)에 마땅히 보내주어야 할 군병과 군기를 미리 조치하는 등의 일은 진실로 수령만을 믿을 수 없으니, 별도로 관인을 보내어 수원·남양(南陽)·양성(陽城)·안성(安城) 등 부근의 군정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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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헌 김찬이 파직시켜 줄 것을 청했으나 사퇴하지 말라고 답하다.
대사헌 김찬(金瓚)이 아뢰기를,
“신은 본래 자질이 용렬한데다가 학문의 공효마저 없었는데 요행히 과거에 올라 성명의 총애를 받은 탓으로 청반을 두루 지내고 재상의 반열에 외람되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한갓 자리만 차지하고 녹만 받아먹는다는 비방만 쌓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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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남의 점술에 대한 공초 내용을 기록하다.
이성남(李成男)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 신은 점술을 대강 압니다. 임진년 분탕질할 때에 왜적이 5월에 청주(淸州)를 함락하였습니다. 연기현감(燕岐縣監) 임태(任兌)가 신에게 왜적이 올지 오지 않을지에 대해 네가 모름지기 점을 쳐보라.’ 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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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보의 공초 내용을 기록하다.
조덕보(趙德輔)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신은 난리 초기부터 미조항첨사(彌助項僉使)의 군관으로 적을 토벌하였습니다. 금년 3월에 청주 남일리(南一里) 여종 정금(井今)의 집으로 가니, 외 6촌 한종운·한중운(韓仲雲)이 종의 집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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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선의 공초 내용을 기록하다.
박중선(朴仲宣)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대대로 보은에 살다가 임진년에 왜적을 피해 홍주(洪州)로 가서 오늘날까지 빌어먹었습니다. 금년 2월에 소를 올리러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청주(淸州) 정좌산(正坐山)에 있는 이름을 모르는 집에 묵었는데, 곧 양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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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남 등에게 별다른 역모 단서가 없자 곽희정과 면질시키도록 하다.
추국청이 아뢰기를,
“이성남(李成男)·강효남·한담·한종운·한중운·조덕보·신여옥·이경상·전대로·박중선·한현(韓絢), 노(奴) 삼종(三從) ․ 애손·순옥 등을 곽희정이 진고한 사연으로 추문하였더니, 별다른 단서가 없습니다. 다만 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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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각지역의 근황과 왜적의 정세에 대해 마도독에게 자문을 보내다.
흠차비왜총병관후군도독부도독동지 마(麻)에게 회자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경성에서 부산 · 서생포에 이르는 길이 매우 많습니다. 한 길은 충청도 공주를 경유하여 전라도 전주 · 남원을 거쳐 경상도 의령과 진주로 가서 부산에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