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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례사 박희중 등에게 옷 등을 하사하고 국서를 내리다.
일본회례사 박희중(朴熙中)과 부사 이예(李藝) 등이 길을 떠나니, 각각 옷 1벌씩과 모관․갓․신과 약품을 내리고, 서장관인 봉례랑(奉禮郞) 오경지(吳敬之)와 통사 윤인보(尹仁甫) 등에게 각각 모의관․갓․신을 내렸다. 국서에,
“조선국왕은 일본국왕 전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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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규주 등이 가하를 구류하여 심문한 후 예조에게 서장으로 알리다.
규주와 범령 등이 가하를 구류하여 잡아매어 놓고 심문하니, 가하가 그 연고를 갖추어 고하기를,
“규주 등이 어소(御所)에 보고할 서장에 이르기를, ‘조선국왕이 경판을 허락하지 아니하니, 배 수천 척을 정비하여 조선을 침략하면서 경판을 약탈하자.’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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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회례사 박안신과 이예를 내전에 불러 접견하다.
일본국 회례사 상호군 박안신(朴安臣)과 부사 대호군 이예(李藝)가 복명하였는데, 임금이 내전에 불러 들여 접견하였다. 안신이 계하기를,
“신 등이 처음에 적간관(赤間關)에 이르자 규주(圭籌)가 국서를 등사하여 급히 어소(御所)에 보고하였는데, 55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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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서당 ․ 범령 등이 대장경 판본을 청하는 일본 국왕의 글을 바치다.
일본국왕의 사신 서당(西堂)․범령(梵齡) 등이 그 국왕의 글을 받들어 올리니, 그 글에 말하기를,
“일본국 도전(道詮)은 조선국왕 전하께 글월을 받들어 올리나이다. 지난해 바다를 건너갈 때에 청구한 것은 ≪대장경≫의 판본이었는데, ≪화엄경≫ 등의 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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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왕에게 전하는 회답의 글을 왜국 사신에게 주다.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니, 왜국 사신 중태와 범령 등 40여 인이 절하여 하직하고, 상사와 부사는 전 안에 올라와 서남쪽에 부복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웃에서 좋게 지냄이 이미 오래였으며, 구하는 경판을 줄 수가 있으면 어찌 2번 청하기를 기다리겠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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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왜인 육랑차랑의 중국 침략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경상도관찰사 첩문(牒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대마도 종정성(宗貞盛)이 보낸 나근시로(羅斤時老)가 와서 고하기를, ‘육랑차랑(六郞次郞)이 중원을 침략하고, 본월 15일에 본도(本島)로 돌아와서 말하기를, 「중원의 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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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정우의 진향을 받을 것인가 여부를 논란하다.
세자가 계조당에서 조참을 받으니, 일본국 사신 중 정우 등이 반열에 따랐다. 당 안에서 인견하고 임금의 뜻을 선유하여 위로하고, 조계청(朝啓廳)에 사연(賜宴)하였다. 이날 이른 아침에 정우(正祐) 등이 먼저 근정전 뜰에 나아가 국서(國書)를 드리고, 예를 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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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정우 등이 돌아가면서 국왕에게 회답하는 글을 보내다.
일본국(日本國) 사신 정우(正祐) 등이 돌아감에 있어 국왕에게 회답하는 글에 말하기를,
“조선국왕(朝鮮國王)은 일본국왕(日本國王) 전하에게 받들어 회답한다. 이번에 글을 보내고 다음으로 물건을 주었으니 참으로 위로되고 만족한다. 사자가 또 후한 뜻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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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중 경능이 원의성의 글을 가지고 와서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사신 중 경능(敬楞)이 왔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일본국 원의성(源義成)은 절하고 조선국왕 전하께 회답을 올리나이다. 귀국이 이웃나라와 수호하신 이래로 화석(華席)과 양약 등이 귀국으로부터 아니 오는 때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불교가 동점(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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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사 경릉 등이 빈전에서 곡하고 예물과 서계를 바치다.
일본국사 경릉(景楞) 등 25인이 빈전(殯殿)에 나아와서 곡(哭)하고 예물과 서계를 바쳤는데, 그 서계는 이러하였다.
“일본국 원의성(源義成)은 조선국왕 전하께 삼가 회답합니다. 귀국은 인국의 우호를 돈독하게 한 후로부터 화려한 돗자리와 좋은 약 등을 …